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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문고리에 걸어두는 마음[관계의 재발견/고수리]

고수리 에세이스트
입력 2022-05-20 03:00업데이트 2022-05-20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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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리 에세이스트
아랫집 언니와는 8년째 이웃사촌이다. 우리 집에서 계단 한 층 내려가면 언니네 집. 서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오래 의지하면서 지냈다. 미역국 한 솥 끓인 날이나 수육 삶은 날에는 그릇째 나눠 먹었다. 깨끗이 비운 그릇일랑 뭐라도 먹을 것들 다시 꽉 채워 돌려주었다. 여름이면 수박을, 겨울이면 딸기를 부러 더 사서 나눠 먹었다. 아랫집 윗집 번갈아 놀러 가 시간을 보내고, 힘든 날에는 가장 먼저 달려가 초인종을 눌렀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언니 없는 나에게 아랫집 언니는 ‘이웃사촌언니’나 다름없었다.

코로나 유행이 길어지고 거리 두기가 엄격해지자 아랫집 윗집이라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우리는 서로의 문고리에 무언갈 하나씩 걸어두기 시작했다. 언니, 홍시가 맛있어 보이길래 많이 샀어요. 수리야. 한라봉 농장에서 주문한 건데 못생겨도 맛있다! 언니, 올겨울 첫 붕어빵이에요. 수리야, 어머님이 직접 키우신 블루베리 나눠 주라셔. 어느 날엔 호두과자랑 ‘고로케’가, 또 어느 날엔 짯짯이 말린 오징어가 서로의 문고리에 걸려 있었다. 문고리에 걸어두는 소소하고 귀엽고 맛있고 다정한 것들. 다름 아닌 마음이었다. 힘든 날들이어도 우리 맛있는 거 잘 먹고 잘 지내자고. 그런 시간이 어느덧 2년이나 지났다.

결국 우리 집에도 코로나가 찾아왔다. 해열제 네 통을 비우고야 아이들은 열이 내렸고, 나는 간호하다가 마지막에 확진되었다. 아픈 것보다 아이들 하루 세 끼 챙기고 돌보는 일이 더 힘들었다. 밤새 끙끙 앓고 난 아침, 문을 열어 보니 문고리엔 약봉지가, 문 앞엔 커다란 냄비가 놓여 있었다. ‘괜찮아? 해열제 좀 더 샀어. 밥 챙기는 게 제일 힘들지? 한우 듬뿍 넣고 뭇국 한 솥 푹 끓였다. 힘들 땐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잖아. 애들만 말고 엄마도 잘 챙겨.’ 언니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무거운 냄비 영차 옮기고서 소고기뭇국에 밥 말아 한술 뜨는데, 어찌나 뜨뜻하고 맛있던지 속이 뭉클하게 데워졌다. 다정한 이웃사촌 덕분에, 만나고 싶지만 만나지 못한 날들에도 만나지 않고도 만나본 것처럼 잘 지낼 수 있었다.

엊저녁에는 언니네 해물파전 부쳤다고 여덟 살, 다섯 살 남매가 내복 차림으로 배달을 왔다. 우리 집 거실을 기어 다니던 아기는 올해 1학년이 되었다. 파전이랑 겉절이 건네며 “맛있게 드세요” 인사하는 아이들에게, 참외랑 찹쌀떡 건네며 “고맙습니다” 마주 인사했다. 이웃사촌들 만날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잘 자라주어서 고맙습니다. 문고리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지만, 그래서 좋았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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