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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임희윤 기자의 죽기전 멜로디]공부를 한다? 밴드를 한다! 살아 있는 밴드들의 밤

입력 2022-05-19 03:00업데이트 2022-05-19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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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2022에서 우승한 우크라이나 밴드 칼루시 오케스트라가 트로피를 거머쥔 뒤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함께여서 좋은 것. 이것이 밴드의 힘이다. 토리노=AP 뉴시스
임희윤 기자
‘보컬 모집. 판테라, 세풀투라 스타일 가능한 분들 급구. 성격 좋은 분 우대.’

뭐 대충 이런 문구를 두꺼운 유성 매직으로 휘갈겨 적은 유인물을 여기저기 담벼락에 붙이며 다녔더랬다. 20세기 모년 모월 모일, 나와 드러머 E가 대전 중구 으능정이문화의거리 일대에서 벌인 연쇄 불법 벽보 게시 사건의 전모다. 저런 조악한 모집 공고에도 할 사람은 다 휴대전화로 연락을 해 왔고, 우리는 결국 오디션(‘히든싱어’ ‘청춘스타’의 약 10만분의 1 규모)을 통해 귀인을 낙점하곤 했다.

#1. ‘저요? 저 밴드 해요’

세상 어딜 가도 ‘밴드를 한다’는 말이 제법 통하던 시대였다. ‘춤을 춘다’ ‘랩을 한다’보다도 더…. ‘밴드’라는 두 음절은 비틀스를, U2를, 메탈리카를 상기시키던 시절이었고 기성세대에게 지지 않는 어떤 강력한 기상과 반항 기질, 흥과 멋과 힘을 함께 가진 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회적 시그널에 가까웠다. 물론 그것은 음악계의 중심축이 솔로 가수, 베드룸 팝(말 그대로 침실에서 만드는 1인 제작형 팝 음악) 싱어송라이터, 래퍼로 옮겨가기 전의 이야기다.

#2. 매년 유럽 최고의 노래를 뽑는 경연대회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총성 없는, 그러나 음성은 많은 전쟁이다. 1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제66회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밴드가 우승했다. 우크라이나 그룹 칼루시 오케스트라다. 래퍼와 연주자들로 구성된 팀인데 우승곡인 ‘Stefania’의 무대(QR코드)를 보면 힙합 비트와 랩, 우크라이나 민속음악을 섞어 중독성이 강하다. 특히 수시로 끼어드는 우크라이나 전통 관악기 텔렌카 연주 장면이 압권이다. ‘너네 이런 거 본 적 있어?’라고 쿨하게 묻는 듯한 연주…. 첨단을 넘는 전통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3.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주로 폭발적 가창력을 가진 솔로 가수들의 텃밭이었다. 지난해 이탈리아 록 밴드 모네스킨이 우승한 것이 2006년 핀란드 메탈 밴드 로디 이후 밴드로서는 무려 15년 만의 쾌거였던 것이다. 그 트로피를 올해 우크라이나 밴드가 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밴드를 한다’는 건 힘들다. 의견과 취향이 다른 데다 잘돼서 인기까지 얻으면 상황은 곧잘 점입가경이 된다. 상황과 감정도 변한 다수의 멤버가 서로 물리적으로 치고받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오죽하면 온갖 부와 명예를 거머쥔 천하의 비틀스도 딱 10년 하고 때려치웠겠는가.

#4. 특히나 보컬, 기타, 건반, 베이스기타, 드럼 등 각자의 악기를 들고 음악 제작의 지분을 등분해 가진 전통적 20세기형 밴드들은 그 어려움이 더하다. 연습실에 들어가면 자기 악기 볼륨을 0.5라도 더 올리려 치르는 눈치싸움을 밴드를 해본 이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했으리라. 그래도 밴드의 희열은 바로 거기서 온다. 5초 전까지 멱살잡이를 상상하던 멤버들과 합주에 돌입한 순간, 나의 기타와 ‘저놈’의 드럼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클라이맥스의 찰나에 느끼는 짜릿한 일체감은 밴드인만의 카타르시스 아닐까.

#5. 실은 새로 나온 책 두 권이 저 옛날 밴드의 시대에 관한 개인적 경험을 상기시켰다. 하나는 제목부터 ‘더 밴드’다. 1950년대에 결성된 미국의 벤처스부터 2000년대에 뭉친 영국의 ‘더 1975’까지 장르와 시대를 막론한 각종 밴드 405팀을 다뤘다. 저자는 ‘과연 밴드의 시대는 끝난 것일까?’라는 제목의 머리말에서 ‘밴드의 음악이야말로 대중음악의 근간이고 정수이며 꽃’이라고 단언한다. 이름부터 고색창연한 ‘프로그레시브 록 명반 가이드북’은 또 어떤가. ‘밴드’를 내세우진 않았지만 이 책이 리뷰한 앨범의 제작 주체는 90% 이상이 밴드다.

#6. 밴드가 조금은 낯설어진 시대다. 공식 팀명인 혁오, 이날치를 그대로 불러주면 될 것을 굳이 ‘혁오뺀드’ ‘이날치뺀드’로 부르는 이들이 적잖은 것이 방증한다. 이젠 웬만한 두세 글자짜리 아티스트명은 솔로 가수, 래퍼, 아이돌 멤버의 예명으로 보는 게 더 일반적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밴드의 시대를 기억한다. 그리고 이 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뭘 하며 지낼지 너무 궁금한 저 으능정이거리에서 급구된 보컬과 베이스기타 연주자를 그리워한다. 보고 싶다. 밥은 먹고 다니니? 음악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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