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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코로나로 잊었던 ‘차려입기’ 행복[패션 캔버스/이헌]

이헌 스타일리스트
입력 2022-05-18 03:00업데이트 2022-05-1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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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벨몬드 홈페이지
이헌 스타일리스트
우한 폐렴이 코로나로 바뀌어 불리고 팬데믹이란 말이 익숙해진 지난 2년 반 사이 우리의 옷차림도 급격히 변했다. 명사들의 스타일링 작업을 하던 필자도 코로나 상생 지원금을 심심치 않게 받았으니 확실히 우리의 옷차림은 극도로 간편해진 것 같다. 옷을 너무나 사랑해서 스스로 ‘옷 환자’라고 불리길 즐기던 필자도 변했다. 온라인 미팅에 사용할 재킷 하나, 셔츠 두 세트, 그리고 타이 하나로 버텼으니 팬데믹이 우리의 삶은 물론이고 산업 지도도 많이 바꿨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 세계 각국이 서서히 일상을 회복하고 해외로 나갈 길이 열리면서 엄격한 복장 규정을 요구하는 상황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바로 ‘베니스 심플론 오리엔트익스프레스(Venice Simplon Orient-Express)’라는 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이 열차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여행의 황금시대를 주도했으나 비행기 등에 밀려 내리막길을 걸었다. 미국 열차 애호가인 제임스 셔우드가 1982년부터 고급 열차 여행을 콘셉트로 운행하다가 2019년부터는 프랑스 명품 그룹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가 인수해 운행하고 있다. 필자는 리모델링을 하느라 운행을 멈췄다가 최근 재개한 이 열차를 1박 2일 동안 취재할 기회를 얻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열차의 복장 규정은 엄격했다. 저녁식사에는 턱시도 차림, 적어도 슈트와 타이를 착용하는 복장 규정을 제안받았고, 기차에선 청바지나 반바지, 슬리퍼 차림을 피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받았다. 객차 내 ‘세끼 식사’를 위해 멀리 유럽까지 여러 의상을 챙겨가는 일은 번거롭기도 했다. 하지만 옷을 고르고, 그 옷을 입고 즐길 시간을 상상하며 짐을 꾸리니 앞서 코로나 때 겪었던 우울감과 괴로움이 날아가는 듯했다.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사라질 뻔하다가 화려하게 부활한 열차에서 격조와 격식이 요구되던 시대를 떠올려봤다. 상대를 향한 예의도, 내가 받고 싶던 대접도 옷으로 우아하게 표현하던 시대. 어찌 보면 번거롭지만 챙기고 지킴으로써 서로의 격조를 높여주던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식사 시간에는 식당 칸에서 복장 규정에 충실한 옷차림으로 맛과 멋을 향유하는 세계 각국 멋쟁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격을 갖춘 옷차림으로 상대를 예우하고 스스로에게 격을 부여하는 과정을 겉치레나 무가치한 허례허식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이 뜰 격’의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니라 ‘격조 격’의 격세지감(格世之感)을 느끼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웃는 날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헌 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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