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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러의 우크라 곡물수출 봉쇄, 전세계 식량위기 불러”

입력 2022-05-16 03:00업데이트 2022-05-16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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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서부 곡창지대 르포
G7 “수백만 아사자 생길 것” 경고
르비우스카=김윤종 특파원
“총을 들고 싸워야만 전쟁터가 아니에요. 우리에게는 논밭이 전장(battlefield)입니다.”

14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스카 일대 농경지. 농부 안드리 씨와 올레흐 씨는 작은 삽을 쥐고 파종기가 지난 콩밭을 살폈다. 기자에게도 삽을 주며 “콩이 잘 심어졌는지 같이 점검하자. 전 세계 식량 위기가 심각하니 당신도 거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작물이 잘 자라는 흑토가 국토의 40%가 넘어 세계 곡물 생산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대표적 곡창지대다. 올레흐 씨는 “러시아 침공 이후 원유 공급이 어렵고 일손도 부족해져 농사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날도 일대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러시아는 최근 르비우스카가 있는 르비우주(州)를 미사일 공격의 새 표적으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안드리 씨는 농사를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농작물을 판 돈으로 무기를 사야 하는 상황입니다. 동포들이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있어요. 어떻게든 농사를 이어가는 게 내 사명입니다.”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들은 이날 독일에서 회의를 연 뒤 “러시아가 흑해 항구를 통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차단했다. 식량 부족과 영양실조로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할 것”이라며 글로벌 식량위기를 경고했다.

러, 우크라 곡물 2500만 t 수출 봉쇄… 식량 해외 공급망 붕괴




러, 흑해 항구 막아 곡물수출 차단
“열심히 농사 지어도 러가 훔쳐가… 침공후엔 농사 못해 앞으로 더 문제”

G7, 흑해 대신 육로수출 방안 논의 “선로 궤도 달라 운송 한계” 지적도
세계銀 “3년간 식량가격 오를 것
러, 기자 숙소 인근 새벽 미사일 공격


비옥한 ‘흑토’ 갖고 있지만… 14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스카 일대 농경지에서 농부 안드리 씨가 흑토를 작은 삽으로 뒤져 보며 콩씨가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농경지의 대부분이 작물이 잘 자라는 비옥한 흑토로 덮여 있어 ‘세계의 곡창지대’로 불린다. 르비우스카=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14일(현지 시간) 오후 우크라이나 서부의 또 다른 농경지대인 홀로호리 일대. 맨손으로 양동이에 든 옥수수씨를 뿌리던 이반 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땀 흘려 키운 농작물로 동포들을 먹이고 전 세계에 수출도 해야 하는데…. 러시아가 우리의 곡식을 항구에서 훔쳐가고 있습니다.”

전직 군인 출신인 그는 아내, 아들과 함께 옥수수, 감자 농사로 생계를 이어왔다. 2월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뒤 그는 농사를 멈추고 군대에 입대하려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당시 국가 총동원령을 내려 18∼60세 남성을 징집 대상자로 소집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농업 인력의 군 입대는 막았다. 우크라이나의 곡물 생산과 수출을 유지하는 것이 전투 못지않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흑해 봉쇄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길이 막히고 올해 봄 생산이 크게 줄면서 전 세계에 앞으로 3년간 유례없는 식량위기가 찾아 올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 “러, 2500만 t 우크라 곡물 수출 차단”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 바구니’ ‘세계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농업 수출 대국이다. 농경지 면적이 약 42만 km²로 한반도(약 22만 km²)의 2배다. 농경지의 41%는 작물이 잘 자라는 흑토다. 우크라이나인들은 흑토를 ‘초르노젬’이라 부른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의 10% 이상을 생산해 수출 세계 5위다. 보리는 전 세계의 12%, 옥수수는 15%를 생산해 각각 수출 세계 3위와 4위다.

특히 식용유로 쓰이는 해바라기씨유는 우크라이나가 전 세계 생산의 절반가량(49.6%)을 담당해 세계 수출 1위다. 이날 서부 농경지를 취재한 기자는 곳곳에서 노란 물결의 장관을 목격했다. 카놀라유를 만드는 유채꽃밭도 곳곳에 가득했다.

2월 전쟁이 터지면서 곡물 운송에 심각한 차질이 생겼다. 우크라이나에서 생산한 밀, 옥수수 등 곡물은 흑해를 거쳐 전 세계로 수출된다. 남부 오데사, 마리우폴 등 흑해 일대 주요 항구도시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특히 러시아군이 항구를 봉쇄하면서 해외 수출을 위한 공급망이 붕괴됐다.

이반 씨는 기자에게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러시아 놈들이 주요 항구를 봉쇄해 곡물 수출을 막고 우리 곡식을 훔쳐가고 있다”며 “이런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그는 “현재 저장된 곡물은 지난 분기 수확한 농작물”이라며 “침공이 시작된 뒤 농사를 이어가지 못해 앞으로 공급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독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의에서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은 13일 현재 우크라이나 항구에 러시아에 의해 봉쇄된 곡물이 무려 2500만 t에 달한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곡물 창고를 파괴하고 수출을 차단하고 있다”며 “세계가 식량 부족 위기에 처했다. 시간이 지나면 더욱 끔찍해질 것”이라고 했다.
○ G7, 우크라 곡물 육로 수송 긴급 논의
G7 외교장관들은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러시아가 차단한 흑해 대신 육로 등 다른 경로로 우크라이나 곡물을 수출하는 방안을 14일 긴급 논의했다. 우크라이나 서쪽 루마니아나 북쪽 발트해 항구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15일 글로벌 식량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공급되도록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곡물의 육로 운송은 우크라이나의 선로 궤도 간격이 약 1.5m로 유럽과 10cm가량 달라 국경 이동의 한계가 분명하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우크라이나 주요 곡물 생산량이 30~5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 밥상 물가는 비상이 걸렸다. 세계은행은 “3년간 식량과 에너지 가격을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5일 오전 2시간 간격으로 2차례 기자의 숙소가 있는 르비우시 전역에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인한 공습경보가 쩌렁쩌렁 울렸다. 일부 시민들은 지하벙커로 긴급 대피했다. 시에서 불과 47km 떨어진 르비우주 야보리우 군사시설을 러시아가 흑해에서 발사한 미사일 4발로 공격해 시설이 완전히 파괴됐기 때문이다. 미사일 공격 공포를 현지에서 직접 경험한 것이다.

르비우스카=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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