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영화감독의 눈에 비친 여성의 아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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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은 첫 단독 주연 ‘오마주’
1세대 여성감독 영화인생 복원
디지털 성범죄 다룬 ‘경아의 딸’
과장없이 섬세하게 ‘피해’ 그려

영화 ‘오마주’에서 김지완 감독(이정은)이 홍은원 감독과 일했던 편집기사의 집을 찾아 홍 감독의 영화 ‘여판사’ 필름 중 검열로 잘린 부분을 영사기로 돌려보고 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영화 ‘오마주’에서 김지완 감독(이정은)이 홍은원 감독과 일했던 편집기사의 집을 찾아 홍 감독의 영화 ‘여판사’ 필름 중 검열로 잘린 부분을 영사기로 돌려보고 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만날 저 구석에 앉아서 뭐 쓴다고 끄적거리고 그랬는데…. 홍일점이었어. 그때는 여자가 거의 없었거든.”

서울 을지로에서 오래된 다방을 운영하는 한 노인이 흑백 사진 속 여성을 가리키며 말한다. 사진 속 여성은 1960년대 충무로에서 활약한 홍은원 감독(1922∼1999). 중년 여성 감독 김지완(이정은)은 1세대 영화감독인 홍 감독의 영화 ‘여판사’를 복원하는 작업을 맡은 것을 계기로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당시 그의 영화가 상영됐지만 지금은 폐쇄된 영화관, 시나리오를 쓰던 다방엔 여성 감독이 희귀하던 시절을 살았던 홍 감독의 인생이 지금도 남아 있다.

26일 개봉하는 영화 ‘오마주’는 현재의 여성 감독이 과거 여성 감독의 영화 인생을 되짚어보는 이야기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역시 중년 여성인 신수원 감독(55).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남성 중심이었던 과거의 영화계에서 버틴 용감한 여성 감독 이야기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석처럼 빛났던 사람들 이야기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배우 이정은은 이 영화로 장편영화 첫 단독 주연을 맡았다. 그는 세 번째 영화를 만들었지만 흥행에 참패하면서 차기작을 기약하기 어렵게 된 여성 감독으로 나온다. 실제 홍 감독은 3번째 영화인 1966년 ‘오해가 남긴 것’을 끝으로 메가폰을 잡지 못했다. 이정은은 “나도 1세대 여성 영화인이 있는지 잘 몰랐다. 이 영화는 영화계 모든 분에게 격려를 보내는 작품”이라고 했다.

여성 감독의 시선에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과 아픔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은 또 있다. 다음 달 개봉하는 ‘경아의 딸’이다. 김정은 감독(30)이 연출한 이 영화는 고교 교사 연수(하윤경)가 주인공. 연수의 전 남자친구는 연수가 그를 만나주지 않자 둘만의 은밀한 영상을 연수 엄마와 연수 친구들에게 유포한다. 영상은 음란물 사이트에까지 유포되고 연수의 공포는 극에 달한다.

영화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여성이 겪게 되는 일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여성들과 연대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도 그린다. 감독은 주인공을 과도하게 꿋꿋하거나 좌절에 빠져 허우적대는 캐릭터로 그리지 않는다. 영상이 퍼져나가며 여성이 겪는 상황들을 별다른 과장 없이, 섬세하게 그려낼 뿐이지만 관객은 공포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김 감독은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맞닥뜨리는 고민과 불안을 다각도로 그려내려 노력했다”라고 했다. 섬세하고 절제된 연출력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7일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 배급지원상과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을 받았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배우 이정은#첫 단독 주연#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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