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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모르는 게 나았을 이야기들[오늘과 내일/김희균]

입력 2022-05-16 03:00업데이트 2022-05-1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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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수행 능력 검증해야 할 인사청문회
국민들에게 트라우마 안기는 구태 멈춰야
김희균 정책사회부장
10년 넘게 알고 지내온 전직 공무원 A는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었다. 지금보다 위장전입에 둔감하던 2000년대, 이사와 자녀의 입학 준비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아내는 이사 갈 동네에 사는 친척집에 잠시만 아이 주소지를 옮겨두자고 했지만 A는 그러지 않았고, 아이는 3년 동안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경제 부처 공무원도 아닌데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도 안 했다. 사적인 모임에 모르는 사람이 두 명 이상 끼면 가지 않았다. 자칫 ‘업자’와 엮일 수 있기에. 부친상에 부정청탁금지법 한도를 넘는 부의금을 보낸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돈을 모두 돌려줬다.

이런 A를 보는 주위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장차관이라도 하려고 그러느냐”고 놀리는 이도 있었다. 장차관은 못 됐지만 영예롭게 퇴직한 A에게 왜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살아왔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A는 “공직자는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공무원 혹은 ‘어쩌다 공무원’에게 이런 수준의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요구하기는 무리다. 하지만 적어도 일반인 수준의 도덕성은 갖추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번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인사청문회에서도 이런 기대는 짓밟혔다.

교육 문제에 민감한 우리 사회에서 ‘자식 잘 키우는 방법’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알게 되는 건 무척 슬픈 일이다. 평범한 국민들 중에 이번 인사청문회 이전에 풀브라이트 장학금이라는 걸 들어본 이는 얼마나 될까. 학부생 자녀를 논문 저자나 연구원으로 키울 만큼 인맥이 있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 ‘아빠 직장’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스펙을 쌓고 의대에 갈 수 있는 자녀는 얼마나 될까. 물려줄 게 없으니 공부라도 시켜야 한다며 열심히 동네 보습학원비를 벌던 수많은 부모들은 난데없이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가진 사람들이 더 이재에 밝다는 걸 알게 되는 것 또한 씁쓸한 일이다. 고가의 외제차를 사면서 위장전입을 하면 매입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공공기관 법인카드 결제가 금지된 시간에 결제를 했다가 취소하고 재결제를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렇다. 부모나 배우자와 부동산 거래를 할 때는 세금을 최대한 안 내는 게 룰인가 싶어질 지경이다.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은 하나같이 불법이나 부당한 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주창하는 ‘공정과 상식’에 맞는지 묻고 싶다. 사전 검증을 엉망으로 한 정부 탓에, 국민의 눈높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관 한번 해보겠다고 등판하는 사람들 탓에, 인사청문회는 번번이 국민들 마음을 할퀴고 있다.

2000년 국회법 개정과 인사청문회법 제정으로 시작된 인사청문회는 그간 국민들에게 ‘그들이 사는 세상’은 따로 있다는 걸 상기시켜 왔다. 여기에 덤으로 국민을 대표해 인사 검증을 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수준까지 알려줬다. 없는 이모를 만들어내고, 영리법인을 사람인 줄 아는 이들이 무엇을 검증하겠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이 정도면 청문 대상자가 아니라 국민들이 인사청문회 트라우마를 겪는 상황이다.

우리가 인사청문회를 통해 알고 싶은 건 그들이 ‘공직을 잘 수행할 능력’을 갖추었는지다. 그런데 그들은 자꾸만 ‘기상천외한 능력’을 보여준다. 무책임한 검증단, 부도덕한 후보군, 무능한 국회가 삼위일체로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암담하다.

김희균 정책사회부장 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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