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혁파 없이 ‘1등 국가’ 될 수 없다[기고/서규용]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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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규용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서규용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차를 운전해 도로에 나가 보면 의문이 든다. 같은 고속도로를 가는데 어떤 곳은 시속 110km, 어떤 곳은 시속 80km다. 고속도로 출구에서도 곳에 따라 시속 60km, 시속 40km로 운전자가 예측하기 어려운 제한속도가 도처에 있다. 이러한 제한속도 규정은 무슨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우리는 많은 규제 속에서 살고 있다. ‘도로 내 제한속도’, ‘부동산 구매 시 자금조달계획서 제출’과 같은 개인 생활과 밀접한 규제에서부터 ‘남녀 고용평등법 적용 범위 5인 미만 전체 사업장 확대’, ‘근로자 기숙사의 1실당 거주 인원 8명 이하 제한’과 같은 기업 경영에 영향을 주는 규제까지 그 범위도 넓다.

1986년 경제력 집중 억제의 아이디어로 도입된 ‘대기업집단 지정제’는 우리 경제가 괄목할 성장을 이룬 현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또 시장 개방으로 경제 국경이 사라진 현재에도 과거의 기준으로 국내 기업에만 적용되는 역차별 규제도 존재한다. 한번 도입된 규제는 도입 당시에 비해 상황이 크게 바뀌어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역대 정부는 민간의 자율과 창의성 극대화를 위해 규제개혁을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추진해 왔다. 김대중 정부는 ‘규제 50% 줄이기’를 밀어붙여 필요한 규제도 철폐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규제 수를 약 40% 줄였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시대착오적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혁파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규제만 늘어날 뿐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심사 대상에 오른 규제는 5795건에 달한다. 이 중 규제개혁위원회가 철회, 개선 권고, 부대 의견을 낸 것은 128건에 그친다. 심사 대상 규제 중 2.2%만 제동을 건 것이다. 이는 ‘규제 전봇대 뽑기’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 때 규개위의 규제 제동률 10.9%는 물론이고 ‘손톱 밑 가시’를 빼내겠다고 공언한 박근혜 정부의 규제 제동률 5.8%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다.

과도한 규제는 사회의 자율성과 성장을 저해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신기술이 정부 공인을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만 봐도 그렇다. 신속한 일처리는커녕 담당 공무원의 재량권도 없고, 문제 발생 시 책임에 대한 규제만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모든 규제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가공동체의 공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일정 부분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는 필요최소한으로 하되, 규제 목적의 정당성과 규제 수준의 적정성을 점검하고 비용과 편익 분석에 따라 신규 도입 또는 철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은 산업계의 생태계를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규제의 방식도 생태계의 변화에 맞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

“임기 중 풀 수 있는 규제는 다 풀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호남 지역을 찾아 이렇게 밝혔다. 현재 국민들이 가장 듣고 싶은, 그리고 새 정부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임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을 짚었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규제가 사회를 옭아매는 한 ‘세계 1등 국가’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

서규용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규제 혁파#1등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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