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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2030세상/김지영]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입력 2022-05-10 03:00업데이트 2022-05-10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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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스스로를 잘 먹이는 편이다. 표현이 이상한데, 말 그대로다. 지금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공들여 질문하고 공수한다. ‘뭐 먹지?’ 다음 끼니를 고민할 땐 다음 여행지를 고를 때만큼이나 마음이 들뜬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면서부터 머릿속은 저녁 식사 후보군을 추리느라 분주하다.

가령, 월요일엔 반주를 하는 편이다. 의식적으로라도 주말엔 업무 영역의 스위치를 끄는 편인데, 그만큼 월요일 예열에 에너지가 많이 든다. 퇴근 즈음이 되면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져 스스로를 기분 좋게 만들 일을 찾아 나선다. 많은 경우 그것은 ‘맛있는 밥’으로, 그렇다면 역시 반주로 귀결되곤 한다. 근래 가장 즐겨 찾는 조합은 집 앞 단골 고깃집에서의 ‘삼쏘(삼겹살에 소주)’다. 혼밥 레벨 최상이라는.

맛도 맛이지만 정서를 소비하는 편이기에, 나의 저녁은 차라리 식사를 가장한 놀이에 가깝다. 어느 퇴근길에는 노상에서 먹는 골뱅이무침이 구체적으로 당겨 한적한 주택가의 ‘골뱅이무침 파는 치킨집’을 찾아 나섰고(두 조건을 만족시킬 확률이 높다), 유독 서러웠던 어느 날엔 거금을 들여 홀로 코스요리를 즐기기도 했다. 사회 초년 시절, 풀이 죽어 있으면 ‘나가자, 밥 사줄게’를 외치던 선배처럼, 스스로에게 그런 다정한 사람이 되어 먹고 싶은 것을 묻고 챙겨 먹인다.

식욕은 삶에 대한 의욕에 비례한다던가. 우울증의 주된 증상 중 하나가 식욕 감소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논리적 비약일지언정) 의식적으로라도 식욕을 증진시키는 것이 삶에 대한 의욕 또한 증진시켜주지 않을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단순한 진리를 좀 더 잦게 깨우치지 않을까.

일례로 작년 여름, 남편과 매주 토요일 저녁 동네 맛집을 탐방하는 ‘토요OO(동네명)’를 기획했다. 이를 본 따 부모님은 최근 ‘화요OO(동네명)’을 시작하셨다. 매번 회, 감자탕 같은 익숙한 메뉴만 드시는 게 답답해 근처 맛집을 정리해 메뉴판을 만들어드렸다. 어차피 주중 한 끼 이상은 하는 외식, 그저 조금 더 정성 들여 메뉴를 고르고 기약 있는 기다림을 시작했을 뿐인데, 부모님은 가슴이 뛴다 하신다. 먹고 싶은 음식을 고민하며 한 주를 보내는 인생도 사실은 꽤 재미있다.

오죽하면 그런 책 제목이 있을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처음 이 제목이 충격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납득이 갔기 때문이다. 떡볶이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그만큼 식욕은 강력하다. 지금 당장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주저 없이 맛있는 음식이라 답하겠다. 참 단순한데,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뭘 해도 어쩐지 재미가 없고 의욕이 없다면, 지금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정성껏 고민해 보길 권한다. 함께 먹는 사람, 시간과 장소, 가격에도 구애받지 말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한 끼 만큼은 스스로에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묻고 대접해 주는 그 옛날의 ‘다정한 선배’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혹 이미 ‘넘치게’ 실천 중이라면, 오늘만큼은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데에 이 글이 좋은 빌미가 되길 바란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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