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 존 리, ‘거수기 선거’로 홍콩 행정장관에… 中직접통치 본격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홍콩 반환 후 첫 경찰 출신 수장

8일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단독 출마 후 당선된 존 리 전 정무사장(왼쪽)이 부인과 함께 꽃다발을 들고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홍콩=AP 뉴시스
8일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단독 출마 후 당선된 존 리 전 정무사장(왼쪽)이 부인과 함께 꽃다발을 들고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홍콩=AP 뉴시스
“존 리가 ‘거수기(Rubber stamp) 선거’로 당선됐다.”

8일 간선제로 치러진 홍콩 행정장관 선거 결과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렇게 묘사했다. 경찰 출신의 스트롱맨, 즉 강경 친중 인사 존 리(중국명 리자차오·李家超·65) 전 정무사장은 이날 선거에서 99.2%의 압도적 득표로 당선됐다. NYT는 그가 중국의 낙점을 받아 단독 출마했다는 점을 집중 부각했다. 지난해 3월 친중 인사의 선거 출마만 가능하도록 선거제도를 바꾼 결과, 중국공산당만 집권할 수 있으며 표결 때마다 100%에 가까운 찬성이 나오는 중국의 상황이 홍콩에서도 재연됐다고 우려한 것이다.

리는 당선 연설에서 “법치주의를 견지하고 홍콩을 대내외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며 반중 활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1997년 홍콩 반환 후 관료가 번갈아가며 집권했던 홍콩에서 반중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전력이 있는 인사가 최초의 경찰 출신 수장이 됐다. 행정 및 금융 경험이 전무하고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때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2020년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그가 강력한 공포 통치를 펼치면 세계의 금융허브였던 홍콩의 위상이 하락하고 서방과의 갈등 또한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은 영국에 “50년간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보장하고 740만 홍콩인을 대표하는 행정장관을 직접 뽑게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직선제 약속은 무위로 돌아갔고 이번 선거로 중국의 직접 통치 또한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압승 예고된 ‘거수기 선거’
리는 이날 1461명의 선거인단 중 1428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1416표(99.2%)를 얻었다. 반대는 8표에 불과했다. 그는 홍콩 반환 25주년, 중국공산당 창당 101주년, 홍콩보안법 시행 2주년이 겹친 올해 7월 1일 5년 임기의 행정장관에 오른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투표장인 홍콩 컨벤션센터 주변에는 약 6000명의 경찰이 배치됐다. 7000명의 경찰이 별도로 인근에서 대기하는 등 삼엄한 분위기였다.

민주 국가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99.2%의 찬성률은 지난해 선거제 개편이 이뤄졌을 때부터 예고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행정장관 선거 때는 친중 인사끼리라도 경쟁을 벌여 일말의 민주적 형태를 갖췄지만 이번에는 그런 구색조차 사라진 거수기 선거였다는 의미다. 5년 전 선거에서 캐리 람 현 장관은 존 창 전 재정사장, 우쿽힝 전 고등법원 판사와 3파전을 벌였고 65.6%의 지지를 얻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쟁자가 전혀 없는 이번 선거를 “겉치레 겸 눈속임”이라고 혹평했다. 실제 상당수 홍콩 시민이 “오늘 선거를 하는지도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는 등 관심도 또한 역대 어느 선거보다 낮았다.
○ 홍콩의 중국화 가속 불 보듯

1977년 경찰에 입문한 리는 2017년 경찰 수장인 보안국장에 임명됐고 2019년 홍콩 범죄인을 중국으로 송환할 수 있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를 강력하게 진압하면서 중국의 눈에 들었다. 2020년 홍콩보안법 제정 및 집행, 지난해 반중 언론 핑궈일보 폐간 등도 주도했다.

그가 취임하면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 송환법 재추진 등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중국은 줄곧 홍콩 당국에 국가 분열, 국가 전복, 테러, 외국과 결탁한 안보 위협 등 4가지 범죄만 처벌할 수 있는 현 보안법을 보완할 별도의 국가보안법을 자체적으로 도입하라고 압박했다.

홍콩 금융계와 홍콩에 진출한 외국인 기업가의 불안 또한 커지고 있다. 타라 조지프 전 주홍콩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AFP에 “리는 비즈니스 경험이 없는 첫 번째 홍콩 지도자”라며 중국의 우선순위가 홍콩의 경제가 아닌 안보와 통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 정책을 완화하고 있지만 홍콩이 중국의 강력한 격리 정책을 좇아 출입국에 많은 규제를 가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친중 존 리#거수기 선거#홍콩 행정장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