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집으로’ 할머니 역 하고 싶다”던 강수연…미개봉 ‘정이’가 유작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7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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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6일 부산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춘몽’ 기자회견에서의 배우 강수연 모습. 뉴스1
2016년 10월 6일 부산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춘몽’ 기자회견에서의 배우 강수연 모습. 뉴스1
“기력이 있는 한 배우를 하고 싶어요. 75세가 됐을 때 영화 ‘집으로’의 할머니 같은 역할을 하면 정말 좋겠어요.”

7일 오후 3시 별세한 배우 강수연 씨(56)가 생전 했던 말이다. 고인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남은 생도 영화에 오롯이 헌신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노년의 배우로서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끝내 볼 수 없게 됐다. 뇌출혈에 따른 심정지로 5일 쓰러진 그가 쾌유하길 많은 이들이 간절히 염원했지만 그는 끝내 병상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원조 ‘월드 스타’였던 고인이 눈감았다는 소식에 영화계와 팬들은 황망해하고 있다.

고인은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로 한국 배우 최초로 당시 세계 4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영화계 변방이었던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1989년엔 또 다른 세계 4대 영화제였던 모스크바영화제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위상을 또 한 번 끌어올리는 등 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고인은 올해 1월 말 넷플릭스 영화 ‘정이’ 촬영을 마치고 최근까지도 후반작업을 하는 등 1969년 데뷔한 이후 50년이 지났음에도 영화와 연기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임권택 감독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2011년) 이후 11년만에 출연한 장편영화 ‘정이’ 출연을 계기로 공식 활동을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유작이 된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정말 밝고 활발했다. 연출부도 얼마나 잘 챙겨줬는지 모른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과 함께 1980, 90년대 영화계에서 활동한 이장호 감독은 “최근까지도 아주 건강했다”며 “너무나 좋은 배우, 너무나 아까운 배우가 이렇게 가버렸다”라고 말했다.

고인이 걸어온 길은 한국 영화사와 맥을 같이 한다. 고인은 1969년 세 살 때 길거리캐스팅으로 데뷔한 이후 초등학교 때 어린이 드라마 ‘번개돌이’ ‘똘똘이의 모험’에 출연하며 아역 스타가 됐다. 고교 시절인 1982년 영화 ‘깨소금과 옥덜매’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에 출연하는 등 TV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임예진 이덕화 전영록 등의 ‘얄개 1세’ 배우들에 이어 ‘얄개 2세’를 대표하는 하이틴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2011년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고인에게 ‘최고의 여배우’라는 수식어가 붙게 해준 분야는 단연 영화계였다. 그의 정식 영화 데뷔작은 1976년 ‘핏줄’. 이후 ‘별 3형제(1977년)’ ‘어딘가에 엄마가(1978년)’ 등 여러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하며 연기 내공을 다졌다.

1985년 김수형 감독의 ‘W의 비극’,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2’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성인 역할을 맡으며 한국 최고 배우로의 도약을 예고했다. 배창호 감독은 “아역 시절부터 재능이 특출해 눈여겨보던 배우였는데 성인이 돼서도 그 참신함이 여전하더라. 그래서 내가 직접 캐스팅했다. 발랄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던 모습이 생생하다”라고 회고했다.

고인이 20대 초반에 ‘어린 거장’ 배우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에는 임권택 감독의 공이 컸다. 고인은 1987년 개봉한 임 감독 작품 ‘씨받이’에서 주인공 ‘옥녀’ 역을 맡았다. 그는 이 역할로 그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한국배우가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수상한 건 고인이 최초였다. 당시 본보는 고인의 수상 소식을 전하며 “강수연의 수상은 한국영화 60년 사상 첫 쾌거”라며 “이번 수상은 한국 영화 발전의 신기원을 이룩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뒤이어 1989년에는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 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한국 최고 여배우 지위도 일찌감치 굳혔다. 당시 모스크바영화제는 칸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4대 영화제로 꼽혔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은 “1997년 인도 남부 지역에 있는 도시 트리반드룸에서 열린 인도영화제에 강수연 씨, 임권택 감독과 함께 참석했는데 현지 주민들이 ‘씨받이를 봤다. 강수연 연기가 정말 좋았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라며 “한국영화와 한국배우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그만큼 큰 기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생전 고인이 “내 인생의 어른”이라며 아버지라고 불렀던 임 감독은 2010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한국영화 시스템이 요즘만 같았어도 강수연은 더 큰 스타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임 감독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충격을 받았다. 임 감독의 아내 채령 여사는 “수연이는 우리 부부의 딸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우리 부부를 찾아왔기에 임 감독이 ‘너 왜 요즘 작품 안하냐’고 장난처럼 나무랐는데, ‘연상호 감독과 작품한다’며 밝게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고 했다.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감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등 1980, 90년대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처녀들의 저녁식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강조하거나 여성이 겪는 차별 문제를 들여다보는 등 여성에 대한 사회적 변화를 작품을 통해 보여줬다.

드라마 ‘여인천하’(2001~2002)에서 주인공 정난정 역을 맡아 대중을 압도하는 연기를 선보여 연기대상을 받는 등 2000년대엔 다시 드라마에서도 활약했다. 2007년엔 드라마 ‘문희’의 문희 역으로 열연하며 연기 내공을 과시했다. 대종상영화제 및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시드니 국제영화제 심사위원(2013년), 제10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2015~2017)을 역임하며 국내외 영화계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2012년 영화 ‘주리’
2012년 영화 ‘주리’
가장 최근 출연한 영화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정이’를 제외하면 2013년 단편영화 ‘주리’다. 마지막 장편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으로 2011년 개봉한 ‘달빛 길어올리기’였다.

고인은 영화에 대해 “끊임없이 답을 안 주는 사랑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영화에 온 마음과 힘을 바쳤고 마지막까지 영화를 놓지 않은 진실한 영화인이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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