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던 강수연, 그녀가 걸어온 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7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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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6일 부산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춘몽’ 기자회견에서의 배우 강수연 모습. 뉴스1
2016년 10월 6일 부산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춘몽’ 기자회견에서의 배우 강수연 모습. 뉴스1
배우 강수연 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를 받던 중 7일 오후 3시경 별세했다. 향년 56세.

고인은 5일 뇌출혈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후송된 후 뇌사 판정을 받았고 7일 숨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강 씨는 5일 오후 5시 14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두통 등 통증을 호소하다 가족 신고로 출동한 소방대원들에게 심정지인 상태로 발견됐다. 의료진이 수술을 해도 호전될 가능성이 낮고 위험이 있다고 진단을 내리자 강 씨의 가족은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강 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인공호흡기를 단 채 6일 새벽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결국 눈을 감았다.

고인과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 관련해 작업을 한 연상호 감독은 “최근까지도 후시 녹음 등 ‘정이’ 후반 작업을 위해 만났다. 건강했고 평소처럼 엄청 밝은 모습이었는데 믿을 수 없다. 갑작스럽게 비보를 듣게 돼 당황스럽다”고 했다. 강 씨는 최근 ‘정이’ 연출부 스태프에게 밥을 사며 “촬영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함께 점심을 먹고 차도 마셨는데 매우 밝은 모습이었다. 다만 건강이 좋지 않아 대학병원을 계속 다니고 있어 ‘정이’를 찍는다고 했을 때 걱정됐다”고 말했다. 이장호 감독은 “지난해 10월 강릉영화제에서 만났을 때 아주 건강했다.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 살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한 고인이 걸어온 길은 한국 영화사와 맥을 같이 한다. 초등학교 때 어린이 드라마 ‘번개돌이’ ‘똘똘이의 모험’에 출연하며 아역 스타로 떠올랐다. 영화 데뷔작은 1976년 ‘핏줄’이다.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에 옥녀 역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한국배우 최초로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1989년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 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모스크바영화제는 칸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4대 영화제로 꼽혔다.

1985년 영화 ‘고래사냥2’를 함께 작업한 배창호 감독은 “아역 배우 때부터 엄청난 재능을 가진 배우였고 성인이 돼서도 참신한 모습이 여전해 직접 캐스팅했다”라며 “대단한 가능성을 보였고 항상 발랄했던 배우였다”라고 말했다. 고인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인 임 감독은 “통이 크고 의리가 있고 최선을 다하는 배우”라고 했다.

1989년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1989년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1989년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1989년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감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등 1980, 90년대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드라마 ‘여인천하’(2001년)의 정난정 역, 2007년 드라마 ‘문희’의 문희 역으로 열연했다.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시드니 국제영화제 심사위원(2013년), 제10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2015~2017년)을 맡아 국내외 영화계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1991년 영화 ‘경마장 가는길’
1991년 영화 ‘경마장 가는길’
가장 최근 출연한 영화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정이’를 제외하면 2013년 단편영화 ‘주리’다. 마지막 장편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인 ‘달빛 길어올리기’(2010년)였다.

고인은 생전 의리 있고 인간적인 면모로 유명했다. 불의 앞에서는 상대의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당당하고 단호하게 처신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를 월드 스타 반열에 오르게 해준 임권택 감독에 대한 의리를 지켜왔다. 2008년 부산 동서대는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을 출범시켰다. 당시 임 감독을 위해 고인이 특강강사들을 다 섭외했다고 한다. 임 감독은 2010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번 (강사로) 불러오려면 몇 백 만 원은 줘야하는 배우나 스태프들을 수연이가 다 데려온다. 특강료는 대학에 다 기부하고… 참 재주도 좋다”라고 말했다.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
고인이 ‘깡수연’으로도 불린 건 카리스마 넘치는 행동 덕분이었다. 과거 영화 제작자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그를 호텔에 불렀을 때 주저 없이 뺨을 때렸다고 한다. 그는 이 같은 사실에 대해 부인하지 않은 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하는 건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못 받아들인다”라고 잘라 말한 바 있다.

영화 ‘베테랑’(2015년)에서 주인공 황정민이 내뱉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는 대사의 원작자는 고인이다. 과거 류승완 감독을 만나 농담처럼 한 말인데 영화 대사로 쓰이면서 돈 등 각종 유혹 앞에서도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은 명대사로 회자되고 있다.

2011년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2011년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고인은 ‘말술’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과거 남녀 배우, 제작자, 감독들과 어우러져 술을 마시면 늘 고인만 살아남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영화계의 유명한 애주가들도 고인에게 술로 이겨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삭발 투혼’은 고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 고인을 월드스타로 만든 ‘아제 아제 바라 아제’에서 비구니 역을 하기 위해 삭발을 하던 모습은 한국영화사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면으로 손꼽힌다. 고인은 당시 “머리는 또 자라는 법”이라는 말도 남겼다. 삭발 장면은 2016년 열린 ‘한국영화 100년 사진전’ 등에 여배우의 열정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전시되는 등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2012년 영화 ‘주리’
2012년 영화 ‘주리’
고인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등학교 때부터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하며 살았다. 이 때문에 고인에겐 생전 “가정 환경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따라다녔다. 그는 그때마다 “독신주의자는 절대 아니다”라며 “나도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싶지만 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답하곤 했다.

생전 고인은 “기력이 있는 한 배우를 하고 싶다. 75세가 됐을 때 영화 ‘집으로’의 할머니 같은 역할을 하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에 한국 영화를 알리고 한국 영화사에 빛나는 자취를 굵고 깊게 남긴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와 함께 한 영화계의 진정한 별이었다.

영화계는 영화인장으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김동호 전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장례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조문은 8일부터다. 발인은 11일.

영화배우 강수연이 걸어온 길
1966년 서울 출생

1969년 동양방송 전속 아역배우 데뷔

1987년 영화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옥관문화훈장,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미미 역

1989년 영화 ‘아제 아제 바라 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윤주 역

1991년 영화 ‘경마장 가는 길’ J역

1992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1995년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혜완 역

2001년 드라마 ‘여인천하’ 정난정 역

2007년 드라마 ‘문희’ 문희 역

2012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

2013년 시드니국제영화제 심사위원

2015~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2022년 영화 ‘정이’ 서현 역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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