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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콧물 흘리게 돼 기뻐… 꽤 괜찮은 해피엔딩”

입력 2022-05-06 03:00업데이트 2022-05-0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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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55% 화상 극복한 이지선 교수, 에세이 ‘꽤 괜찮은 해피엔딩’ 펴내
“내것이라 여긴 게 내것 아니더라… 절망속 품은 작은 희망이 나를 인도
소외된 이들이 기댈 언덕되고 싶어”
4일 서울 송파구 카페에서 만난 ‘꽤 괜찮은 해피엔딩’의 저자 이지선 한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6년 차 교수인 그는 “첫 수업 때는 학생들 눈도 못 마주쳤다. 그때보다는 수업시간에 식은땀을 덜 흘리는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지선아 스무 살 된 것 축하해.’

2년 전 7월 30일 오빠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수신자는 당시 42세이던 이지선 한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44). 그에게는 생일이 두 개다. 2000년 7월 30일 그는 다시 태어났다. 그해 대학 4학년이던 그는 오빠 차를 타고 귀가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피부 이식수술이 마흔 번을 넘으면서 횟수를 세지 않게 됐다는 그는 고통과 인내, 깨달음으로 지난 20년을 살아왔다.

서울 송파구 카페에서 4일 그를 만났다. 그는 2003년 40만 부가 팔린 에세이 ‘지선아 사랑해’(이레)를 시작으로 지난달 27일 12년 만에 네 번째 에세이 ‘꽤 괜찮은 해피엔딩’(문학동네)을 펴냈다. 책은 사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여정을 담았다.

두 엄지를 제외한 여덟 손가락의 끝마디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을 때 팔 전체를 떼어내지 않음에 감사해야 했다. 얼굴에 이식한 인조피부가 녹아내릴 때는 ‘왜 하필 나에게?’라는 물음이 수년간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엄지로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면서 자신에게 벌어진 사고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글쓰기를 통해, 길을 가다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친 것처럼 나와 상관없는 이의 잘못으로 사건이 벌어졌다고 객관화할 수 있게 됐어요. 내가 지은 죄가 있다거나, 하나님의 뜻이라는 타인들의 해석에서 이제는 자유로워요.”

그는 ‘당연히 내 것이라 여긴 모든 게 사실 내 것이 아니다’라는 진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얼굴에 화상을 입으면 코 안쪽 피부가 두꺼워져 얼마 전 콧구멍을 넓히는 수술을 받았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콧물이 흐른다. 기쁘다.’

“화상 치료를 위해 소독약으로 온몸을 세척할 때 치료실 바닥에서 철퍽철퍽하는 물소리가 났어요. 그 소리가 너무 공포스러웠는데 3년 전부터 목욕탕에서 물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세신을 받을 수 있게 돼 너무 감사했어요.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걸 알기에 행복을 더 느낄 수 있어요.”

그는 2004∼2016년 미국 보스턴대와 컬럼비아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사회복지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생활 12년 동안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마주친 이조차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꺼내놓고 싶지 않은 가장 아픈 기억을 갑자기 묻는 무례함이 견디기 힘들었어요. 미국인은 나와 다른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겨도 그걸 표현하지 않는 게 예의라는 걸 알아요. 장애인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역지사지가 필요해요.”

6년 차 교수인 그는 소외된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고 싶다고 했다. 2019년부터 코미디언 이성미 송은이, 이영표 강원FC 대표, 가수 션과 함께 부모가 수감 중인 청소년들을 돕고 있다.

“완벽한 어둠이라고 생각한 절망 속에서 ‘적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슬프게 끝나진 않을 거야’라는 작은 기대를 품는 게 희망인 거 같아요. 그 희망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해줬어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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