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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상륙작전을 감행하라[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61〉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입력 2022-05-06 03:00업데이트 2022-05-0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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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상륙’이라 하면 우리는 ‘인천상륙작전’을 떠올린다. 6·25전쟁을 승리로 이끈 작전이니 상륙이라는 단어는 긍정적 느낌을 준다. 상륙(上陸)이란 육지에 올라간다는 의미다. 오랜 기간 바다에서 항해를 마친 선원들이 목마르게 기다리는 것은 육지의 달콤함이다. 그러니 상륙만큼 기다려지는 것이 없다.

오랜 항해를 마치고 닻이 내려지는 순간 상륙이 가능해지고 선원들의 기대감은 최고치에 이른다. 외국 항에 도착하면 신문물과의 접촉에 기대감이 잔뜩 더 높아진다. 펜팔을 하던 여성이 일본 오사카에 있을 때에는 그녀와의 만남이 기다려졌다.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일본 말을 항해 중 엄청 외워서 상륙했다. 일본 말이 늘었다는 칭찬을 받으면 우쭐해졌다. 미국에서 일단의 친구들을 만났다. 일체유심조 등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속담을 영어로 만들어 외운 다음 상륙했다. 이를 설명해주면, 이들은 한국 최고의 지성을 만난 듯 나를 좋아라했다. 친분이 있던 덜쿠프 선생은 동양의 청년이 미국 문화에 관심을 보이자 자신이 소장하던 니미츠 제독 자서전, 미국백과사전, 케네디 자서전 등 책을 한 보따리 넘겨주었다. 이 부부가 보내온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낼 우체국을 찾아가는 것이 상륙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외국에 상륙해 기쁜 마음으로 가족들, 지인들의 선물을 준비했다. 일본에 가면 워크맨과 같은 전자제품을, 미국에서는 초이스 커피를, 중국에서는 편자환과 같은 약을 준비했다. 친황다오에 입항, 8달러에 산해관을 시작으로 만리장성을 구경하고 점심과 저녁을 거하게 먹었다. 1985년 내가 경험한 가장 싼 관광이었다.

일본에 가면 파친코라는 구슬치기로 선원들은 시간을 보냈다. 구슬이 구멍에 많이 들어가서 당첨이 되면 돈을 따는 형식이다. 호기심에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돈을 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엔 될 듯 말 듯, 배로 돌아갈 택시비까지 모두 잃어버렸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부두까지 1시간을 뚜벅뚜벅 걸어서 허탈하게 배로 들어갔다. 내가 경험한 가장 처량한 상륙작전이었다.

컬럼비아강은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와 워싱턴주를 관통하는 넉넉한 강이다. 닻을 강에 놓고 보니 강가에서 젊은 남녀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항해에 지친 선원들이 저 강가에 가서 일광욕도 하고 바비큐도 해 먹자고 했다. 대피용 구명정을 내려야 한다. 강한 조류에 구명정이 밀려 좌초되지 않을지? 책임자인 1등 항해사는 걱정이 앞선다. 나는 총대를 메고 선장님을 설득했다. 구명정 2대를 모두 내려서 선원 15명은 무사히 상륙했다. 우리들은 일광욕을 했고, 고기도 구워 먹고 풀밭에 누워서 하늘도 바라봤다. 기분 좋게 있다가 저녁 무렵에 모두 안전하게 귀선했다. 긴 항해 동안 선원들은 이 상륙작전의 에피소드를 반복해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그 여운은 하선할 때까지 길게도 갔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들이 선명하다. 아름다웠던 이국의 풍경들,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선원들이 즐거워하던 모습…. 상륙은 역시 좋은 것이야.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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