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도전 가로막는 의료기술평가제도

입력 2022-05-06 03:00업데이트 2022-05-06 03:04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3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 2022) 행사장. 의료기기 분야 최대 규모 전시회로 국내외 의료기기업체 1200여 개사가 참가해 첨단의료기기, 헬스케어·재활기기, 의료 관련 용품 등 3만여 점을 전시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번 달부터 약 5억 원이던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치료제 ‘킴리아’가 건강보험 급여를 받게 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례적으로 환영 성명을 낼 정도로 사회적으로 영향이 큰 사건이었다. 지난달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가 비소세포폐암에 대한 1차 치료제로 급여 등재됐다. 2017년 이후 등재 시도 9번 만에 성사됐다. 두 약제 모두 고가 약제의 보험급여로 유명세를 치렀지만 본질은 기술 혁신을 통한 환자 치료 기회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의료기술의 혁신과 발전은 난치성 환자들에게 전에 없던 희망과 기회를 제공한다. 오늘날 평균 수명의 증대에 의학과 관련 기술의 발전이 공헌한 바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하지만 어떤 새롭고 뛰어난 기술도 환자에게 혜택으로 이어지려면 결국 정부 및 평가기관으로부터의 꼼꼼한 규제와 지난한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보건당국의 신중한 검토와 의견 수렴, 의사 결정은 궁극적으로 국민과 환자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현재 혁신 의료기술의 도입 과정에 적용되는 규제 수준이 과연 최적점에 있는지는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 환자와 의료현장의 요구 수준 모두 예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약제 분야에서는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도입 등의 제도가 이번에 대통령 국정과제로 선정될 만큼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의료기기의 경우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다. 특히 새로운 형태의 의료기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고 당장 시중에 팔리는 것이 아니다. 그 다음 단계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건평원)에서 ‘신의료기술평가’ 대상인지를 먼저 검토받아야 한다. 이것이 약제 분야와 큰 차이다. 일단 신의료기술평가 대상으로 지정되면 개발자에게는 엄청난 진입 장벽이 생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서 하는 신의료기술평가는 애초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의료기술의 진입 과정에서 안전성과 유효성 등을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하고 결정하겠다는 의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환자 보호라는 본연의 중요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은 시행 과정의 문제점들 때문이다.

우선 평가에 소요되는 기간이 너무 길다. 혹여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더라도 건평원의 보험급여 검토와 보험가격 산정 과정을 또 거쳐야 한다. 결국 새로운 의료기술로 시장을 노크하더라도 응답을 받는 데 최소 3년 이상의 기간을 기다리기 일쑤다. 허가부터 출시까지 법정 최대 소요기간은 490일이지만 이 기간 내에 모든 과정이 끝날 것이라 믿는 업계 관계자는 보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신의료기술평가에 회부된 기술 가운데 40% 이상은 그나마 평가에서 탈락한다는 데 있다. 그렇게 되면 그 기술들은 시장에서 많은 경우 사장(死藏)되는 길을 걷는다. 해외시장을 두드리고 싶어도 자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기술과 제품을 순순히 허가하고 보험급여를 내줄 국가는 많지 않다. NECA도 이 문제를 인식해 ‘제한적 의료기술 평가제도’를 통해 아까운 기술들을 구제하고 있다. 일정 기간 진료에 활용하게 하고 효과의 근거 축적을 돕는 제도인데, 이 혜택을 받는 기술은 극히 일부에 머문다.

의료기술의 발전은 기존 접근을 되풀이하고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롭고 비약적인 시도를 통해 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시스템하의 의료기기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것은 큰 모험이다. 도리어 기존 기술과 방식을 답습한 제품이 훨씬 빠르고 안정적으로 급여권에 진입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신의료기술평가는 해외에서도 작동하는 제도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인허가 기관의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는 자국의 시장 진입을 어느 정도 허용하고 있다. 무조건 업계의 입장에 중심추를 두고 신속하고 자유로운 신기술 도입을 우선시하자는 건 아니다. 보건의료에 대한 의사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신속 등재가 가지는 약점을 보완할 방안 또한 적지 않다. ‘선(先) 시장 진입-후(後) 신의료기술평가’ 등의 제도 도입이 그중 하나다. 이미 3년 전부터 체외진단검사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최근 혁신적인 의료기술들이 속속 나오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개선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