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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특파원칼럼/김기용]中의 코로나 봉쇄에 희생되는 한국 교민들

입력 2022-05-06 03:00업데이트 2022-05-0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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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된 상하이 아파트서 40대 한국인 홀로 숨져
韓정부, 中에 유감 표명도 대책 마련 요구도 없어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중국 베이징에 대기업 주재원으로 나와 있는 40대 남성 A 씨는 ‘코로나19 국제 이산가족’이다. A 씨는 1년 전 베이징에 왔지만 가족은 여전히 서울에 있다.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가족에게는 초청장을 발급해 주지 않아서다. A 씨는 가족과 함께 지내려고 마련한 큰 집에서 1년 넘게 혼자 살고 있다.

베이징에는 A 씨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한국인이 꽤 많다. 일부는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들은 주중 한국대사관에 부탁도 하고 회사를 통해 강하게 요청도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중국 방역 정책에 따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뭘 해도 안 된다’는 무기력의 극치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그래도 중국이 한국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 잘해 주는 편이다. 다른 나라가 알면 중국이 난처해질 정도다”라고 했다.

A 씨에게 상하이에서 숨진 주재원 B 씨 얘기는 충격이었다. 역시 40대 남성이던 B 씨는 유통 대기업 주재원으로 상하이에 혼자 나와 있었다. B 씨는 3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 씨가 코로나19 핵산 검사에 수차례 응하지 않자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이 찾아갔고 숨진 B 씨를 발견했다. 중국 당국이 사인을 조사하고 있는데 심근경색에 의한 돌연사로 잠정 결론 난 것으로 전해졌다. 주상하이 한국총영사관 측은 “중국 당국에 공정한 조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B 씨 지인들은 기자에게 “B 씨가 특별한 지병이 있어 보이진 않았고 건강했다”고 말했다. B 씨의 사망에는 무자비할 정도로 강력한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가족이 중국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없었고,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않은 혼자 사는 외국인을 위한 대책도 없었다. 하지만 중국 측 조사에 이런 결과가 담길 리는 만무하다. 5일 현재 중국의 유감 표명이 있었다는 소식도 없다.

지난해 4월 상하이에서 40대 여성 교민이 중국산 백신을 맞고 사흘 만에 숨진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용이 강하게 의심됐지만 중국 측은 백신 접종과 사망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결론 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유감도 표명하지 않았다.

최근 베이징 한국국제학교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갑자기 강제로 시설 격리되는 일도 있었다. 이 학생은 확진자와 같은 공간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자가 격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늦게 밀접접촉자로 재분류되면서 시설로 혼자 보내졌다. 미성년자이면서 한국인이자 중간고사와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학생이라는 사실에 대한 중국 당국의 배려는 전혀 없었다.

중국 측은 모든 것이 ‘과학적 판단’ ‘방역 원칙에 따른 조치’라고만 설명한다. 한국대사관 측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무기력이 학습되고 있다. 중국이 한국에 단체 여행객을 보내지 않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 게임 등의 수입을 금지하는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을 발동했을 때도 한국 정부의 대응은 무기력했다. 학습된 무기력은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데도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못 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며칠 후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주중 한국대사도 곧 새로 임명될 것이다. 오랜 시간 중국에 대해 학습된 무기력을 과감하게 끊어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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