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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시대도 가족도 춤추지 말라했지만… ‘남자 무용수’로 살아온 67년의 기록

입력 2022-05-05 03:00업데이트 2022-05-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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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낸 ‘한량무 개척’ 월륜 조흥동
한국 전통남성춤, 스승 17명 사사
‘춤추는 남성’에 대한 차별과 맞서 1981년 국내최초 남성무용단 창단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춤사위로…”
월륜 조흥동 씨가 오른손에 부채를 들고 한국 전통무용 ‘한량무’를 추고 있다. 댄스포럼 제공 ⓒBAKi
시대도 가족도 그에게 춤추지 말라 했다. 누이 넷을 둔 집의 외아들이었다. 부모는 귀한 막내아들이 판검사가 되기를 바랐다. 한 끼 먹고 살기도 빠듯했던 시절 한국무용가 조흥동 씨(81)는 다른 꿈을 꿨다. ‘춤추는 남자’라고 손가락질해도 아랑곳 않고 한량무 태평무를 춘 송범 한영숙 이매방 등 스승 17명에게 한국 전통 남성 춤을 사사했다.

“언젠가 자서전을 내도 될 만큼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었어요. 부모님 사진을 한쪽에 싣고 이 말을 꼭 하고 싶었거든요. 판검사나 부자는 못 되었지만 부모님 사진 빛나게 해줄 정도로 최고의 무용수가 됐다고….”

꿈은 현실이 됐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5호 한량무 보유자인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조흥동류’ 한량무를 개척한 한국 전통 춤의 대가가 됐다. 남성적인 기백이 넘치는 조흥동류 한량무는 한국 무용 콩쿠르에서 남성 지원자들이 추는 대표적인 춤이다. 2017년 대한민국최고무용가상, 2018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월륜 조흥동 자서전’(댄스포럼)을 출간한 조 씨를 3일 서울 중구에 있는 그의 춤 전수관에서 만났다.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국악사 양성소에서 무용을 배운 지 올해로 67년이 됐다. 그는 “부모님에게도 춤을 배운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을 정도로 사회적인 시선이 곱지 않았다”며 “거리에서는 고개를 푹 숙이며 다니다가도 연습실에만 들어서면 고개를 꼿꼿이 들었다. 춤이 내 팔자였다”며 웃었다.

조 씨는 춤추는 남성에 대한 세상의 차별과 맞섰다. 1981년 국내 최초로 한국남성무용단을 창단한 그는 “위대한 남성 무용가들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다 같이 모여 춤추는 남성에 대한 차별에 맞서 보자고 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자부했다. 한국남성무용단은 창단 직후 제3회 대한민국무용제에 출전했다. 여성 무용이 주류였던 무용계에서 파격적인 시도였고 변화가 일어났다. 이 대회에서 한국남성무용단이 안무상을 받은 것. 국내 1세대 무용 평론가 고 조동화 선생은 당시 “무용계의 르네상스가 일어났다”고 평했다.

1990년 국립무용단 상임 안무가에 이어 예술감독을 지낸 그는 지금도 제자들에게 직접 몸을 쓰며 춤사위를 가르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20년, 국민대 공연예술학부에서 22년간 강사로 제자를 양성했다.

“내일 당장 무대에 올라가 춤추래도 90분 공연을 완벽하게 해낼 자신이 있어요. 여생 동안 제자들에게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춤사위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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