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국방백서부터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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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달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북한이 지난달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일주일 뒤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를 향한 북한의 협박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과 핵실험 준비 징후에 이어 지난달 25일 인민혁명군 90주년 창건 열병식에서 대남·대미 핵타격 무기를 총동원하더니 김정은이 직접 나서 ‘선제적 핵공격’까지 위협하는 판국이다. 5년 만에 귀환한 남한의 보수정권을 길들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속내를 확연히 드러낸 것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을 빌미로 ‘제2의 천안함·연평도 도발’과 같은 벼랑 끝 대결도 불사할 것으로 우려한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파상적 도발 공세로 전쟁 위기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모든 책임을 한국에 돌려 한미동맹을 이간질하고, 남남갈등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북한의 도발과 안보 위협에 대해 한 치의 오차 없이 임해 나갈 것”이라고 누차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선 지난 5년간 대북 유화 기조에 젖어 무뎌질 대로 무뎌진 국가안보의 창끝을 벼리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그 ‘첫 단추’로 국방백서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필자는 본다. 2년 주기로 발간되는 국방백서는 국민의 생명과 영토 수호를 위한 국방·안보 전략과 정책, 비전 등을 담은 정부 공식 문서다. 무엇보다 당면한 안보 위협의 경중(輕重)과 우선순위, 관련 대책 등이 가감 없이 기술돼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당면한 안보 정세를 냉철히 판단할 수 있고, 군도 대응태세를 가다듬을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두 차례 발간된 국방백서는 본연의 취지와 역할에서 한참 벗어났다는 지적이 많다. 대북 화해 기조에 과도하게 치우쳐 북한의 군사 위협을 간과하는 등 ‘정치 백서’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북한군은 적(敵)’이라는 문구를 빼고 “대한민국의 주권, 영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기술한 게 대표적 사례다. 초국가적·비군사적 안보 위협까지 적 개념에 포괄했다는 군의 설명은 옹색한 변명일 뿐이다. 핵무력 증강에 골몰하면서 선제 핵공격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부르지 않는 것은 대북 저자세이자 안이한 대적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군이 호부호형(呼父呼兄)을 금지당한 홍길동 신세라는 자조마저 나오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2월에 발간된 ‘2020국방백서’는 1개 장(章)을 할애해 10여 쪽에 걸쳐서 2018년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 군사합의가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신형 미사일 연쇄 도발 등으로 남북관계를 긴장과 대결로 퇴행시킨 북한의 행태에 군이 사실상 눈을 감은 것이다.

국방백서의 북한 핵능력 평가도 전면 수정돼야 한다. 미 국방정보국(DNI)을 비롯한 해외 정보기관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5년간 대화 국면을 틈타 매년 최대 100kg의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하고 핵 소형화도 이미 달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발간된 국방백서들은 HEU는 ‘상당량’, 핵 소형화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일관해 왔다. 북한의 핵무력 실태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기는 고사하고 눈과 귀를 가린 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통상 첫 핵실험 후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팎이면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1차 핵실험을 한 지 16년이 흘렀고, 6차례나 핵실험을 한 북한의 핵 소형화는 완성 단계로 간주하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와 신형전술유도무기 등 단거리미사일에 장착할 전술핵도 조만간 전력화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 북한의 핵탄두 보유량도 최대 100여 기에 달하고, 향후 5년 내 2배로 늘어날 가능성이 유력하다.

국방백서에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북한 위협의 실태와 의도를 있는 그대로 적시하는 것은 군의 기본적인 책무이기도 하다. 그래야 장병들이 명확한 대적관을 견지하고, 국민도 엄중한 안보 상황에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어떤 안보위기도 헤쳐 나갈 수 있는 국가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내년 초 발간될 윤석열 정부의 첫 국방백서가 ‘안보 나침반’이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오길 바란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국방백서#북한 협박#대륙간탄도미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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