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콘텐츠 경쟁 위해, 낡은 방송 규제 손볼 때다[동아시론/이성엽]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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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규제 없는 OTT, 미디어콘텐츠 시장 잠식
성장보단 규제 집중했던 방송 정책이 문제
K콘텐츠 확산 위해 미디어 규제 전환 필요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지난달 2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유료방송 기술중립성 도입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동안 케이블은 유선주파수(RF), 인터넷TV(IPTV)는 인터넷프로토콜(IP) 방식으로 전송 방식이 규제되고 있었으나, 이제 법 개정으로 유료방송 사업자가 전송 기술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유료방송 기술중립성이라고 한다. 지상파는 무선주파수, 케이블은 유선주파수, IPTV는 IP라는 특정 방송전송 방식에 따른 방송면허 구분을 폐지하는 규제 완화 조치였다.

이처럼 방송시장의 낡은 규제가 점차 폐지되고 있다. 이런 규제 혁신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방송시장의 변화 때문이다. 태풍의 핵은 넷플릭스, 디즈니, 유튜브 같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급속한 성장이다. OTT는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라는 점에서 방송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가운데, 콘텐츠의 유통 플랫폼으로서 또한 거대자본이 투입되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자로서 콘텐츠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다. 다음 변화는 방송시장의 저성장 흐름이다. 2021년 방송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방송시장 규모는 매출액 기준 18조118억 원으로 전년보다 1.9% 증가했으나 증가율은 매년 감소세다. 사업자별로는 IPTV가 지상파와 케이블을 제치고 1위이다. 사실 방송시장 매출 18조 원은 24조 원인 통신사 KT보다 작은 규모다.

결국 방송시장은 OTT가 급속히 미디어콘텐츠 시장을 잠식하고 있고, 레거시 미디어 시장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방송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생각할 수 있으나, 효과는 단기적이며 정책의존적인 허약한 산업구조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방송시장의 낡은 규제 완화이다.

우선 대표적인 규제인 진입 규제와 소유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 현행 진입 규제는 케이블·위성·IPTV 등 플랫폼은 허가, 홈쇼핑·보도·종편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는 승인이다. 우선 플랫폼의 경우 OTT 등장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허가제를 유지할 근거가 부족하다. 일정한 설비 및 자본금 등 요건을 갖추면 진입을 허용하는 등록제로의 전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다양한 보도매체의 경쟁, T커머스·라이브커머스 등 대체재가 등장한 상황에서 보도, 홈쇼핑 PP 승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진입 규제에 수반하는 조건도 문제다. 정부는 2019년 이후 15∼21개 조건을 붙이는 등 많은 조건을 부가해 왔다. 법령상 의무를 반복하는 내용, 허가 등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 사업자의 이행이 어려운 내용의 조건이 많다. 정부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 수허가자의 열악한 지위를 이용하여 위법, 부당의 여지가 있는 조건을 붙이고 있다.

둘째, 재허가·재승인의 정당성에 관한 것이다. 재허가 거부 사례는 2009년 서대구방송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재허가의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 당초 재허가 취지는 행정기관이 허가 등 사업에 대한 정기 점검을 시행해 사업 운영에 대한 적법성을 감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허가 취소, 업무 정지를 통해 적법성 감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당성이 인정되기 어렵다.

셋째, 시장점유율 규제다. 케이블과 IPTV는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 3분의 1을 초과하는 것이 금지된다. 그러나 OTT 확대로 유료방송 시장점유율의 의미가 쇠퇴하고 있으며, 시장점유율 확대로 인한 부작용은 인수합병 심사 시 조건 및 금지행위 등의 사후 규제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폐지하거나 기준을 확대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넷째, 대기업과 외국인의 지상파방송에 대한 소유 규제, 방송사업자 간 교차소유 규제는 소유권의 분산을 통해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과도한 소유 규제는 다양한 자본의 유입을 통한 방송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부작용도 있다. 이미 정부는 2009년 방송법을 개정해 여론 독과점을 막기 위한 매체합산 시청점유율 규제를 도입했다. 이런 점에서 소유·겸영 규제를 철폐하거나 대폭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은 방송의 여론 형성이라는 공익적 기능을 달성하기 위해 촘촘하면서도 정교한 규제를 시행해 왔다. 정부의 미디어·콘텐츠 정책은 방송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산업으로서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K콘텐츠로 대표되는 국내 콘텐츠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다. 이제 미디어·콘텐츠 산업이 세계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미디어 규제의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넷플릭스#콘텐츠 경쟁#방송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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