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영]文 정부 5년 다큐, 낯 뜨거운 ‘셀프 칭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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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자찬 ‘文비어천가’ 가득한 영상백서
그리 유능한 정부라면서 왜 정권 내줬나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출연하는 토크쇼 ‘유퀴즈’가 방송될 즈음 청와대 유튜브 채널에는 4부작 다큐멘터리 ‘문재인 정부 5년의 기록,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올라왔다. 청와대와 KTV 공동 기획으로 문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돌아보는 영상백서다. 굵직한 사건들을 다양한 시선에서 재조명했다고 해서 봤더니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선전물이다.

1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 오판에서 시작해 핵공격 위협으로 끝난 대북정책 편. 2018년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와 전 세계 언론에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 발표했다. 이 말을 믿고 북-미 정상회담을 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그런데 도저히 믿기 어려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준 정 실장의 발표 장면을 다큐는 “북-미 외교의 중심에 대한민국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순간”이라고 기록한다.

2부는 경제 편인데 집값 폭등이나 소득주도성장 얘기는 한마디도 없다. 그 대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를 길게 소개하는데 서사 구조는 이렇다. 일본이 강제징용 판결에 보복하려고, 진주만 공습하듯 기습적으로 수출규제를 했으나, 대통령이 흔들림 없이 난국을 돌파해 ‘소부장 독립’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뭉개고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게을리한 한국도 책임이 없지 않고, 대법원 판결에서 일본의 보복 조치까지 8개월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정부는 안일하게 대응했으며, 큰 피해는 없었지만 소부장 독립을 선언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게 사실에 가깝다.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극복한 정부도 이런 자화자찬용 다큐를 찍지 않았다. 수출규제에 대응한 게 “경제 장관들이 매일 아침 7시에 회의” “일본이 완전 꼬리 내렸다”며 흥분하고 생색낼 일인가.

3부 코로나 편은 더하다. 마스크와 백신 대란도 정부의 늑장 대응에 대한 자성은 없고 해결사로 활약했던 무용담만 가득하다. 마스크 대란에 “홍해의 기적처럼 마스크 공급의 기적을 만들자”며 ‘홍해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백신 부족은 대통령이 “민간 제약사와의 화상통화는 보안규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참모의 만류에도 직접 나서서 해결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K방역’의 자랑인 진단키트 지원 약속에 “생큐를 연발했다”는 것이다.

4부도 성공의 기억들로 채웠는데 주인공은 대통령이다.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마음 내려놓고 북-미 정상이 주인공이 되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일본 수출규제 위기가 오히려 승부처라는 놀라운 역발상”을 하며 “안전에 관해서만큼은 99점도 용납하지 않았다”.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고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낸 종합행정의 지휘자”였으며 “국민께 예의를 다한 대통령”이었다. 이런 성군의 치세였는데 왜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건가.

정부의 백서라면 정책 추진 과정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제언을 담아 후임 정부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함에 목적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참모와 각료들이 나서서 ‘마스크 생산 지원하느라 직원들이 옷도 못 빨아 입었다’ ‘우한 교민 이송 위해 스파이 작전하듯 요소요소 막힌 길 뚫고’ 하며 성공을 ‘호소’하는 영상에 무슨 공익적 가치가 있나. 건실했던 나라를 빚더미에 위태롭게 올려놓고 내놓은 다큐 제목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다. 그들만의 ‘대안적 세계’에 살았던 이들이 5년간 나라를 이끌었다니 아찔하다. 다큐가 아니라 코믹 호러물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文 정부#5년 다큐#셀프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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