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첨단 민주국가서 히틀러는 어떻게 나왔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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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벤저민 카터 헷 지음, 이선주 옮김/428쪽·1만9800원·눌와

“독일인같이 교양 있고 책을 많이 읽으며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파시즘에 만족할 수는 없다.”

1934년 우익 지식인 에트가어 율리우스 융(1894∼1934)은 나치에 의해 살해당하기 전 이 말을 남겼다. 반(反)지성주의를 내건 파시즘은 이성적인 독일과 양립할 수 없다는 그의 말과는 달리 히틀러는 10년 넘게 철권을 휘둘렀다. 나치 집권으로 붕괴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비례대표 선거제와 인권보호 등 당시로선 최첨단의 민주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독일에서 어떻게 히틀러라는 괴물이 출현할 수 있었을까.

미국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히틀러 집권의 배경을 1930년대 당시 독일이 처한 국제정세와 국내 여론, 개별 정치인들의 의도와 맞물려 분석하고 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치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전제한다. 독일은 1차 대전 당시 전투부대가 궤멸당하지 않은 채 내부체제 붕괴로 패전했다. 그러고선 천문학적 배상금과 더불어 영토 상실을 겪어야 했다. “내부의 적 때문에 위대한 독일민족이 치욕을 당했다”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강변이 독일인들에게 먹혀든 배경이다.

나치의 여론조작 책략도 한몫했다. 1933년 2월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당시 히틀러는 이를 공산주의 음모로 규정하고, 정적을 탄압하기 위한 ‘비상대권’의 구실로 삼았다. 여기에 보수 우파와 군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자기편이던 돌격대(SA)마저 집단 학살한 무자비함도 권력 강화로 이어졌다.

저자는 현 시대가 탈냉전 직후 자유민주주의 승리를 외치던 1990년대보다 나치가 발흥한 1930년대에 오히려 더 가깝다고 말한다. 우파 포퓰리즘과 신냉전의 국제 갈등으로 점철된 현재가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를 파괴한 나치시대를 연상시킨다는 것. 전무후무한 여당의 입법 폭주로 법치주의 근간마저 흔들리고 있는 한국에도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첨단 민주국가#히틀러#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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