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활동과 연계된 봉사 인기…모발 기부 한 해 2만여명 동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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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MZ세대 달라진 나눔 문화
모발 기부 한 해 2만여명 동참
취미활동과 연계된 봉사 인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도 MZ세대의 소소한 기부는 유행처럼 늘고 있다. 자른 머리카락을 기꺼이 내놓고, 걸을 때마다 적립되는 돈도 기부한다. 여행지에서 봉사활동도 함께 한다. 주머니가 가벼워도 가능한 이색 기부를 알아봤다.》


MZ세대 생활 속 나눔문화


“머리를 기르고 기부하는 데 돈이 드는 건 아니잖아요. 제 머리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참으로 기뻤습니다.”

하진솔 씨(29)는 최근 3년간 길러온 머리카락을 30cm가량 잘라 암과 싸우는 어린이들의 가발 제작에 쓰도록 기부했다. 전남 목포의 한 극단에서 배우로 일하는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공연이 멈춰서면서 설 수 있는 무대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하 씨는 “주머니는 가벼워져도 머리카락은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난다. 모두가 힘든 시기에 기부를 하면 더욱 뜻깊을 것 같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코로나19 사태가 2년 넘게 이어지면서 기부, 봉사가 위축됐지만 큰돈이나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 나서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적지 않다.

걸을 때마다 적립되는 소소한 금액을 기부하고 여행을 떠난 관광지에서 쓰레기를 줍는가 하면, 해외로 가는 김에 입양되는 유기견을 함께 데리고 가기도 한다. 이 같은 활동을 하는 이들은 “기부와 봉사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이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필요한 곳에 힘을 보탤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주머니 가벼워도 나눌 수 있어요”
하진솔 씨가 소아 암 환자의 가발을 만드는 데 기부하려고 자른 두발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하 씨는 3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 30cm를 기부했다.
하진솔 씨가 소아 암 환자의 가발을 만드는 데 기부하려고 자른 두발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하 씨는 3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 30cm를 기부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중에도 ‘어머나운동본부’(어린 암 환자들을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에는 기부자가 크게 늘었다. 2018년 1730명이던 기부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2020년 2만2260명으로 늘었다. 모발 기부는 코로나19의 경제적 여파와 무관하게 참여할 수 있었던 데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분 ‘머리카락 기부 인증’ 바람의 덕을 보기도 했다.

4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 30cm를 잘라 지난해 12월 어머나운동본부에 기부한 신윤하 씨(28)도 SNS에서 우연히 본 머리 긴 초등학생의 사연을 보고 모발 기부를 결심했다고 했다. “한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머리카락을 기부하겠다면서 주변 친구들이 놀리는 와중에도 꿋꿋이 머리를 기른다는 내용이었어요. 귀여우면서도 기특했지요.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취업준비생인 나도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생겼죠.”

신 씨는 “취준생이라 심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지만 그래도 기부할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며 뿌듯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유튜브에서도 머리카락 기부 경험을 다룬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SNS에서 ‘모발 기부’ ‘머리카락 기부’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결과물이 5000건 이상 나온다.


발레를 하며 14세 때부터 긴 생머리를 고수해 온 김모 씨(29) 역시 최근 머리카락을 40cm가량 잘라 기부했다. 발레리나는 긴 머리를 유지하다가 무대에 오를 때 단단히 묶는 것이 보통이다. 코로나19로 설 수 있는 무대가 1년가량 전무했던 것이 도리어 기부의 기회가 됐다. 김 씨는 “내겐 당장 필요하지 않은 긴 머리칼이 어린 암 환자들에게는 절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걸음 기부’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측정된 걸음 수를 토대로 소액을 적립할 수 있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서다. 앱 이용자가 걸은 걸음만큼 캠페인 후원 기업이 비영리단체에 일정액을 기부하게 된다.

이용자들은 걷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5년째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A 씨는 “걷는 게 공황장애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매일 5000∼6000보를 걷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일주일 동안 5만 보를 걸으며 기부 앱으로 일정액을 적립해 유기동물보호센터에 기부했다”고 했다. A 씨는 “치료 삼아 걷기를 시작했는데, 아픔이 있는 다른 동물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으니 뿌듯함까지 느낀다”면서 “코로나19 기간의 우울한 감정을 덜어내는 데도 걸음 기부가 도움이 됐다”고 했다.
○ 놀며, 운동하며 하는 봉사
강원 인제군 설악산에 오르며 쓰레기를 줍는 김하운 씨의 모습.
강원 인제군 설악산에 오르며 쓰레기를 줍는 김하운 씨의 모습.
여행이나 운동 등 취미생활과 동시에 할 수 있는 봉사활동도 각광받고 있다.

김하운 씨(28)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니던 실내수영장이 문을 닫자 즐기기 시작한 등산이 봉사가 됐다. 김 씨는 1년 전부터 한 달에 한두 번씩 쓰레기봉투를 들고 등산을 한다. 그는 “환경 문제가 화두인데 등산하는 김에 산에 있는 쓰레기를 주우면 좋겠다 싶어 ‘등산 플로깅(Plogging)’을 하고 있다”면서 “하산 뒤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버릴 때면 등산로를 깨끗이 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플로깅’은 스웨덴어로 ‘줍다’와 ‘조깅’을 합성한 말로 ‘조깅하며 쓰레기 줍기’를 뜻한다.

전국 명산을 찾아다니며 ‘등산 플로깅’을 한다는 김 씨는 “운동하는 김에 눈에 보이는 대로 쓰레기를 주우면 취미생활에 봉사를 살짝 곁들인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바다에서도 플로깅을 한다. 김은지 씨(29)는 최근 강원 속초 해변에서 ‘서핑 플로깅’을 즐겼다고 했다. 평소 서핑을 할 때면 파도에 휩쓸려 해변에 밀려든 쓰레기들이 눈에 밟혔다는 김 씨는 “쓰레기들이 보일 때마다 하나씩 줍기 시작했더니 어느새 가져갔던 가방이 가득 찼다”며 “앞으로도 서핑할 때 해변 쓰레기를 주울 생각”이라고 했다.

직장인 이모 씨(27)는 6개월 전부터 ‘출퇴근 플로깅’을 시작했다. 서울 관악구 집과 서울 용산구 직장 사이를 달리기로 출퇴근하는 이 씨는 최근 손목에 쓰레기봉투를 달고 다닌다. 이 씨는 “달리기를 하며 쓰레기까지 주우니, 약간의 노력만으로 출퇴근길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어 더욱 보람차다”고 했다.
○ 비행기 타며 유기견도 함께
유기견 해외 입양 봉사에 참여한 김민경 씨가 강아지 ‘노랑이’와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유기견 해외 입양 봉사에 참여한 김민경 씨가 강아지 ‘노랑이’와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의 제약이 컸던 상황에서 해외 파견 근무나 이민, 유학 등을 위해 어렵게 비행기에 오른 기회를 활용해 ‘유기견 해외 이동 봉사’를 하는 이들도 있다.

결혼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이정현 씨(33)는 한국을 방문한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면 유기견과 함께한다. 최근에도 한국에 온 이 씨는 ‘미국으로 돌아갈 때 유기견 한 마리를 데리고 가 달라’는 유기견 해외 입양 지원 단체의 제안을 지인을 통해 받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유기견 입양 지원 단체가 동물들의 비행기 탑승 비용과 서류 등을 준비하고, 봉사자와 함께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도록 수속 및 출국 절차를 돕는다. 봉사자는 도착한 공항에서 기다리는 입양자에게 유기견을 넘겨주면 된다. 코로나19로 국경을 넘는 데 제약이 생기면서 반려견의 해외 입양이 수월치 않은 상황이어서 입양 지원 단체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씨는 “따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제안을 수락했다”면서 “유기견이 무사히 입양돼 새 주인 품으로 가는 걸 돕게 돼 기쁘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한국과 미국을 오갈 때마다 유기견 해외 이동 봉사에 참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스페인에서 직장을 구한 김민경 씨(30) 역시 6개월 전 스페인행 비행을 처음 보는 강아지와 함께했다. 김 씨는 “출국 전 평소보다 1시간 정도 공항에 일찍 도착해 유기견과 먼저 만나 인사하면 되고, 품도 크게 들지 않아 별로 부담이 되지 않았다”면서 “지인들에게 이 봉사활동을 추천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성향이 기부와 봉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코로나19로 각종 활동이 제약된 가운데 젊은 층이 공력을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도 심리적 만족감과 즐거움, 의미를 동시에 발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부나 봉사활동은 육체적 노력이나 시간을 상당히 소모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면서 “실용성과 가성비를 추구하는 MZ세대는 기부와 봉사에서도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본인들의 즐거움까지 함께 얻을 수 있는 활동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존에는 사회적,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려면 ‘경건함’과 책임감이 동반돼야 한다는 인식이 오히려 참여에 심리적 벽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면서 “요즘 세대는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작은 일이라도 주저 없이 실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했다. 신 교수는 이어 “기부와 봉사문화도 다양한 기준에 따른 여러 방식이 실험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식배달 주문 때 “일회용품 빼주세요” 생활 속 작은 실천


2022 기부 트렌드 들여다보니

울진산불 때 무료식사 식당에… MZ세대 ‘돈쭐’ 기부도 줄이어

‘일상 속에서 가볍게’, ‘가치에 맞게’, ‘재밌게’.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는 기부가 각자의 가치에 맞는 재미를 추구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월 사랑의열매가 발간한 ‘2022 기부 트렌드 보고서’는 MZ세대가 △일상 속 실천도 기부로 여기고 △가치 있는 소비나 투자처럼 기부를 대하며 △거창한 기부보다 재미와 자기만족을 중시한다고 분석했다.

‘돈쭐’(돈+혼쭐·구매로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은 이 같은 특성에서 생겨난 새로운 기부 문화다.

온라인 게임 ‘로스트아크’의 게임사인 ‘스마일게이트’는 지난해 12월 ‘돈쭐’이 났다. 이 게임사가 유료 아이템을 구매해 생겨난 수익 일부를 이용자들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하자 MZ세대들이 “이용자로서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자”며 기부에 나선 것. 이용자들이 게임사가 운영하는 사회공헌재단에 각자 5000∼5만 원을 기부하면서 일주일 만에 1만2000건, 약 3억 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지난달에는 경북 울진 산불 당시 소방대원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한 식당에 ‘돈쭐’ 행렬이 이어졌다.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결제한 뒤 “음식은 받지 않겠다”고 하는 식으로 기부에 동참했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생활 속 작은 실천으로 환경 문제 등의 해결에 도움이 되려는 것도 MZ세대의 문화다.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 “일회용품을 빼 달라”고 요청하거나 카페 이용 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쓰레기, 폐기물 등을 남기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에 동참하기도 한다.

2월 발간 사랑의열매 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기부와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일회용품 사용 안 하기’ ‘착한 소비’ 등을 실천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기부금을 내봤다는 응답자는 30%에 못 미쳤다. 울진 식당에 대한 ‘돈쭐’ 행렬에 참여했던 대학생 이준성 씨(26)는 “사회를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며 “특정 기관에 다달이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그때그때 작은 행동에 동참하면서 재미까지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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