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집 있어 기초수급 대상 제외… 생활고 80대 노모-아들, 숨진지 한달만에 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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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통신요금 등 수개월씩 밀려… 90년 된 낡은 집엔 독촉장 ‘수북’
별도 수입 없이 가난에 시달렸지만, 집 있다는 이유로 기초급여 못받아
‘두달 수도료 90만원’ 이상히 여겨… 母子집 찾아간 직원이 첫 발견
오세훈 “복지 사각 없게 더 노력”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주택에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사망한 지 한 달여 만에 발견됐다. 집 안에는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라는 독촉장이 쌓여 있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주택에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사망한 지 한 달여 만에 발견됐다. 집 안에는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라는 독촉장이 쌓여 있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80대 어머니와 50대 아들이 한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람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90년 전 지어진 낡은 집을 보유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급여 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서울 혜화경찰서에 따르면 20일 오전 10시 50분경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낡은 1층 한옥 집에서 어머니 한모 씨(82)와 아들 이모 씨(51)가 숨져 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경찰은 이들이 약 한 달 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 결과 지병을 앓던 아들이 먼저 사망했고 뒤이어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자세한 사망 경위는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 공과금 등 내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
20일 모자의 사망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중부수도사업본부 직원이었다. 1, 2월 수도 요금이 90만 원 넘게 청구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 집을 찾은 것. 이 직원은 경찰 조사에서 “인기척은 없는데 물 새는 소리가 들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모자는 각종 공과금을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22일 찾아간 집 안에는 각종 고지서와 독촉장이 쌓여 있었다. 6개월 치 전기요금 약 26만 원을 내지 못해 ‘전기 공급을 제한한다’는 통지문도 문에 붙어 있었다.

아들 이 씨는 올 2월까지 신용카드 대금 약 152만 원을 납부하지 않아 매달 독촉장을 받고 있었다. 통신비(22만 원)와 케이블TV 요금(52만 원)도 밀려 있었다.

쓰러지기 직전인 집 안에는 쓰레기 더미가 가득했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방 한쪽에는 곰팡이 핀 냄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싱크대는 손만 대면 쓰러질 듯 겨우 버티고 있었다.

오랫동안 두 사람을 알고 지내던 이웃들은 모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이웃들은 어머니 한 씨가 3년 전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면서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50년 전부터 창신동에서 방앗간을 했다는 박모 씨(82)는 “아들은 직업이 없었고 어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청소하러 다니다 3년 전부터 일을 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모 씨(80)도 “어머니 한 씨와 60년 가까이 한동네에서 살았는데 남편 없이 홀로 아들을 키우다 고생만 하고 갔다”며 안타까워했다.
○ 낡은 집 있어 기초수급 대상에서 제외
동아일보가 입수한 모자의 사회보장급여 대상 제외 통지서를 보면 한 씨는 지난해 기초생계급여를 두 차례 신청했으나 소득인정액이 선정 기준(97만 원·2인 기준)을 초과한다는 이유로 올 2월 말 대상에서 최종 제외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서울시에서 산정한 모자의 소득 및 재산 내역은 주택을 포함해 1억7000여만 원. 이를 생계급여 소득인정액으로 환산할 경우 선정 기준의 3배가 넘는 316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한 씨는 1930년대 지어진 이 집을 2020년 매물로 내놨지만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공인중개사 송모 씨(64)는 “집이 팔렸다면 이런 비극이 없지 않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돌아가신 분들은 다 쓰러져 가는 집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이 가슴 아픈 일을 겪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생활고#기초급여#복지사각지대#사망#공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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