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원]우울증에 쓰러지는 창업자들, 멘털 코치가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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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원 DBR 사업전략팀장
김창원 DBR 사업전략팀장
얼마 전 한국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성공신화로 꼽히는 모 게임업체 창업자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의 정신건강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스타트업은 이제 막 출발한 작은 조직이어서 CEO가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챙겨야 한다. 젊은 창업자일수록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불안과 성장에 대한 압박에 시달린다. 스타트업이 몰려 있는 경기 성남시 판교에서 활동하는 한 정신상담사는 “일과 휴식의 경계 없이 파묻혀 살다가 번아웃에 이르고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뒤에야 내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문제는 이러한 정신건강 문제가 중대한 CEO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피곤과 스트레스에 찌들어 내린 엉뚱한 결정 하나가 조직을 멍들게 하고 경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평소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던 회사 대표가 동업자나 핵심 기술 인력과 싸워 사업 자체가 무너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 하버드대가 1937년 시작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하버드대 졸업생 268명의 삶을 80년 이상 추적 조사한 전대미문의 최종단 연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연구는 지능, 건강 등 어느 하나 빠질 게 없는 청년 하버드대생들이 동일선상에서 출발했지만 30%만 성공하고 또 다른 30%는 누가 봐도 아쉬운 부적응적인 삶을 살았다는 데 주목한다.

연구진은 두 부류의 차이를 가른 것은 문제 상황에 놓였을 때 무의식적으로 대처하는 이른바 적응기제라고 분석했다. 사람들은 문제적 상황 자체를 창조적으로 변형시켜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하는 성숙한 적응기제와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심리적 갈등을 해결하는 미성숙한 적응기제를 번갈아 사용한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일수록 성숙한 적응기제를 미성숙한 적응기제보다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성인발달 연구 결과의 더 큰 의미는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성숙한 정신건강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직의 역량은 리더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조직에서 리더가 미치는 영향력과 중요성이 크다는 의미다. 조직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멘털 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투자사들이 과다한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돕기 위해 다양한 심리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건강한 리더십의 중요성을 인정해 투자금의 1%를 스타트업 CEO 멘털 관리에 쓰도록 하는 투자사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창업자들의 정신건강은 개인이 알아서 해결할 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에 돈과 공간을 제공하는 창업 지원은 많아도 스타트업 CEO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은커녕 실태 조사나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액셀러레이터(AC)나 벤처캐피털(VC) 못지않게 멘털코치(MC)가 필요하다.

김창원 DBR 사업전략팀장 changkim@donga.com


#창업자#우울증#멘털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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