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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렌즈의 초점은 국민”…오바마 전속 사진사가 말하는 ‘사진빨 잘 받는 대통령’[정미경 기자의 글로벌 스포트라이트]

입력 2022-04-05 14:00업데이트 2022-04-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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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은 자신을 보좌할 여러 인재들이 필요합니다. 그 중 한 명이 대통령 전속 사진사입니다. 총리도 장관도 아니고 사진사가 뭐 그리 대수일까요? 뉴욕타임스는 버락 오바마 시대 이후 대통령 사진사의 중요성에 대한 의문은 더 이상 제기되지 않는다고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똑똑한 사진 한 장은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국정철학, 성과 등에 대한 열 마디 설명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 시절 백악관 전속 사진사였던 피터 수자(오른쪽)가 오바마 대통령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피터 수자 플리커 계정
2020년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 전속 사진사였던 피터 수자(68)에 대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람직한 대통령상을 그려낸 작가”라고 평했습니다. 수자는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제거작전 때 백악관 상황실 모습을 찍은 사진사입니다. 사진 전문가와 정치학자들로부터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사진을 보면 상황실에 모인 오바마 정부당국자들의 눈은 일제히 현지 작전 영상에 쏠려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희미한 존재’입니다. 정중앙 좌석에서 현지 영상을 상황실 스크린에 띄우는 임무를 맡은 마샬 웹 대령이 ‘주인공 포스’를 풍깁니다.

참석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통령이 입장하자 웹 대령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려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여기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당신”이라고 사양하며 구석에 걸터앉았다고 합니다. 1년여에 걸쳐 제거작전 수립을 지시하고 진행과정을 보고 받는 등 총사령관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실행 상황이 되자 실무자에게 최대한 길을 터주며 권위에 집착하지 않는 리더의 모습이 사진 속에서 그려집니다. 수자는 당시 상황실 내부에서 1시간 동안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에게 초점을 맞출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2020년 다큐멘터리 영화 ‘내가 보는 방식(The Way I See It)’에서 밝혔습니다.

2011년 백악관 상황실에서 오사마 빈라덴 제거작전 영상을 시청하는 오바마 대통령(왼쪽 두 번째)과 행정부 관리들. 백악관 홈페이지
수자의 카메라가 만들어낸 또 다른 오바마 대통령의 이미지는 2009년 백악관 집무실을 방문한 흑인 소년의 사진에서 나타납니다. 국가안보실 직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백악관을 구경하러 온 5세 소년이 대통령에게 “머리를 만져봐도 되느냐”고 살며시 묻습니다. 소년의 질문에는 “대통령도 나처럼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일까”하는 궁금증이 내포돼 있습니다. 처음에는 질문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한 오바마 대통령은 “만져 봐, 이 녀석!”하며 기꺼이 고개를 숙여줍니다.

이 사진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의 자긍심과 그 이면의 고뇌 등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훗날 미셸 오바마 여사는 한 강연에서 “흑인 소년이 자신과 비슷한 머릿결을 가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머리를 만지며 무슨 생각을 했겠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습니다. 미셸 여사에 따르면 이 사진은 재임기간 8년 동안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을 드나들 때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시카고 선타임스 사진기자였던 수자는 2004년 오바마 대통령이 시카고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부터 인연을 맺었습니다. 수자는 오바마의 첫 인상에 대해 “초선 상원의원이었지만 카리스마가 예사롭지 않았다”고 합니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 당선과 함께 백악관에 들어간 수자는 오바마 재임 8년 동안 200만장, 하루 평균 700여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가장 많이 찍은 날은 하루 2000장씩 찍었습니다. 수자는 “오바마 대통령은 지근거리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도 한번도 중단시킨 적이 없었다”며 “시각적 이미지의 중요성을 아는 영리한 대통령”이라고 다큐 영화 ‘내가 보는 방식’에서 밝혔습니다.

2009년 백악관 집무실을 구경 온 흑인 직원 자녀에게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라고 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오른쪽). 백악관 홈페이지
백악관 공보국 소속의 사진팀은 4,5명으로 이뤄졌습니다. 총괄, 행정, 군사, 패션(퍼스트레이디 담당) 등 영역별로 나눠서 활동합니다. 대통령과 사진사는 개인적 유대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사진사도 함께 바뀌는 것이 관례입니다. 수자 역시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백악관 생활을 끝냈습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도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오바마 퇴임 후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혼란스러운 정치를 조롱하는 사회 풍자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나 발언이 논란이 될 때마다 이와 비교되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을 기발한 설명과 곁들여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녀사냥”이라는 트윗을 날리면 수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할로윈 때 마녀 복장을 입은 어린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사진을 올리며 “약간 다른 종류의 마녀사냥”이라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배신한 측근을 “개”라고 욕하자 오바마 대통령의 반려견 사진에 “진짜 대통령을 기다리는 진짜 개”라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수자의 정곡을 찌르는 사진과 설명들은 2018년 ‘비판 날리기: 두 대통령의 초상’이라는 베스트셀러 사진집으로 나왔습니다, 2020년 수자의 작품 세계를 다룬 다큐 영화 ‘내가 보는 방식’도 개봉됐습니다.

2019년 국경장벽 설치 문제로 백악관을 찾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의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관리들과 면담하는 모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수자로 인해 한껏 높아졌던 대통령 사진사에 대한 기대치는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되면서 크게 줄었습니다. 트럼프 전속 사진사였던 쉬알라 크레이그헤드(46)는 뚜렷한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사상 두 번째 여성 백악관 사진사라는 기대 속에서 출발한 크레이그헤드는 단조로운 행사 사진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정면을 응시하는 증명사진 분위기의 사진들을 주로 찍었습니다.

크레이그헤드의 대표작으로 자주 거론되는 사진은 2019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했을 때의 사진입니다. 백악관 회의실에서 펠로시 의장이 백악관 관리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모습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고삐 풀린 낸시, 무너져 내리다”라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펠로시 의장을 조롱하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였지만 오히려 전원 백인 남성들로 이뤄진 트럼프 내각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펠로시 의장의 용기가 사진 속에서 부각됐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크레이그헤드는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사진을 공개할 지에 대해 일일이 자신의 허락을 거치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사에게 충분히 사진을 찍을만한 개인적 접근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잦은 선탠 때문에 오렌지색으로 변한 자신의 얼굴 색깔을 밝아 보이게 해달라는 등의 외모 보정 요구를 자주 했다고 합니다.

수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사로 널리 알려졌지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는 다큐 영화 ‘내가 보는 방식’에서 오바마-레이건 대통령의 공통점으로 “상대를 존중했고 도덕적으로 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에게 ‘사진을 잘 받는 대통령의 비결’에 대해 묻자 “카메라 렌즈는 자신을 향하지만 결국 국민을 비춘다는 것을 아는 대통령”이라고 답했습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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