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유엔 상임이사국 참여 안보협정 있어야 나토 가입 포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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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각서’ 믿고 핵무기 폐기…당시 정부 순진, 그때의 교훈 얻어
안전보장 확실할 때만 중립국 논의
‘외세 침략 경험’ 韓, 우크라에 공감…韓정부 지원 감사, 軍장비도 검토를
서울서 평화콘서트, BTS 참석 희망


주한 우크라 대사 인터뷰 “우리가 싸움 멈추면 조국이 끝납니다”


“러시아가 싸움을 멈추면 전쟁이 끝나지만, 우리가 싸움을 멈추면 우크라이나가 끝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 주한 우크라이나대사로서 업무를 시작한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대사는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했다. 1일 대사관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마주 앉은 그는 “갑자기 어떤 나라가 제주도를 점령하면서 ‘도민들을 해방시키겠다’고 하면 한국은 제주도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역시 영토에 대해선 러시아와 전혀 타협할 여지가 없다”며 외세 침략으로 고통받은 역사를 공유한 한국에 군사장비 지원을 요청했다.


[러, 우크라 침공]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 인터뷰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신임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1일 서울 용산구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진행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은 
시행착오 끝에 민주주의를 이뤘고 우리는 아직 따라가야 할 길이 조금 더 남아있다”며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 과정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신임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1일 서울 용산구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진행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은 시행착오 끝에 민주주의를 이뤘고 우리는 아직 따라가야 할 길이 조금 더 남아있다”며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 과정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포기와 중립국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려면 최소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보장하는 나토 수준의 안보 협정이 선결돼야 합니다.”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1일 서울 용산구 대사관저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평화협상에서 영토에 대해 전혀 타협할 여지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 한국에서 공식 업무를 시작한 포노마렌코 대사는 “우크라이나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나토 가입을 포기해야 한다면 우리가 타협할 수 있는 수준은 강력한 안보 보장을 전제로 한 중립국 지위 정도”라며 “어떤 국가가 갑자기 제주도를 불법 점령해 ‘제주도 사람들을 해방시키겠다’고 한다면 한국 국민과 정부는 이 영토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안전보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향후 러시아의 침공을 억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북대서양조약 수준에 준하는 안보 조약이 있어야 한다. 애초에 우리가 나토에 가입하려던 이유가 2014년 러시아의 침략이 자행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주변국의 보장(부다페스트 안전보장 양해각서)을 근거로 핵무기를 폐기했다. (양해각서라는) 문서 성격상 법적 구속력이 없었는데도 이걸로 외세의 침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당시 정부가 순진(naive)했다. 이제 우리는 그때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다.”


―어떻게 해야 침공을 끝낼 수 있다고 보나.

“전쟁은 8년 전 러시아가 우리의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하고 돈바스 지역을 장악했을 때 이미 시작됐다. 당시 러시아는 ‘내전’이라고 규정하며 프로파간다를 퍼뜨렸고 우크라이나의 호소에도 대부분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공격행위에 눈을 감았다. 세계가 그때 좀 더 단호히 대처했다면 이런 전면전은 막을 수도 있었다. 이제 이 전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은 푸틴뿐이다. 그가 시작했고, 그가 끝내야만 한다. 우리는 계속 맞설 것이다. 우리가 싸움을 멈추면 우크라이나가 사라질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 한국 국회에 화상 연설을 할 예정이다. 어떤 내용이 담기나.


“한국은 외세의 침략으로 고통을 받은 역사가 있어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서울에서 부산까지 영토의 90%를 점령당했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이를 이겨낸 경험도 있어서 두 나라 역사에 대한 비교가 연설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취임 전 거의 대부분의 경력을 청중과 소통하면서 쌓아왔다. 대사관과 참모들이 연설문의 개요는 제안하지만 대통령 스스로 많은 부분을 다듬을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진심을 중시하고 모든 사안에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이번에도 한국인들의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엇을 지원해야 하나.


“10만 달러 재정을 비롯해 인도주의적 구호품(의약품, 텐트, 담요, 헬멧 등)을 지원한 한국 정부의 노력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려면 군사물품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 정부가 향후 군사물품 지원도 포함하는 방향으로 결정해주길 바란다. 대선 직전인 지난달 2일 후보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접견했을 때 이 같은 요청을 전달한 바 있다.”

―일부 한국 기업들은 러시아 철수에 동참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 교역을 일시 중단하기로 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만 애플페이가 러시아에서 즉각 철수를 선언한 것에 비해 한국의 삼성페이는 여전히 러시아에서 서비스가 되고 있다. 러시아에 공장이 있는 현대차나 오리온 등도 러시아 사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나는 이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할 때까지 러시아에서 사업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아직 공식 답변을 받지 못해 이들 기업에 CEO 면담을 요청한 상태다. 러시아가 계속 전쟁을 벌이는 한, 국제사회는 침략국과 결코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져야 한다. 물론 기업들에 경제적 손실이 있겠지만 이를 위해 희생해야할 도덕적 대의가 훨씬 크다.”

―최근 세계적 뮤지션들이 우크라이나를 돕는 콘서트를 열었다. 이에 동참하려는 K팝 스타들도 많을 것이다.

“K팝 스타들을 초청해 4월 중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BTS 초청도 추진하려 한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모금 활동을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서울 간 자매도시 결연도 준비 중이다. 키이우 측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자매결연) 양해각서 초안을 보낸 상태다. 결연을 맺으면 더 많은 교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일부 국가들이 각국 주재 러시아대사관의 도로명주소를 ‘우크라이나 영웅로’로 바꾸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서울도 동참할 수 있길 바란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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