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의심 파고드는 추리극…긴장감 있는 연출 해보고싶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8일 12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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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 ‘붉은낙엽’ 연출가 이준우 인터뷰

‘붉은 낙엽’ ‘왕서개 이야기’ 등을 연출한 이준우.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붉은 낙엽’ ‘왕서개 이야기’ 등을 연출한 이준우.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왕서개 이야기’ ‘무순 6년’ ‘수정의 밤’…. 역사 속 피해자들을 무대에 등장시켜 용서와 회복이란 묵직한 질문을 던져왔던 연출가 이준우(37)는 지난해 처음 추리극에 도전했다. 토머스 H. 쿡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붉은 낙엽’이다. 한 남성이 이웃집 아이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자신의 아들이 지목된 후, 내면에서 벌어지는 믿음과 의심의 경로를 추적해 가는 작품이다.

그의 첫 추리극은 그야말로 지난해의 화제작이 됐다. 제58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신인연출상을 거머쥐고 제14회 대한민국 연극 대상을 받는다. 못 보고 지나친 관객들을 위해 4월 15~17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재공연된다.

22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연극에선 배우가 보여야 하고 인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며 “‘붉은 낙엽’ 역시 아들을 의심하는 에릭이라는 중심 인물의 내면을 긴장감 있게 따라가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한 연극 ‘붉은 낙엽’의 한 장면. 극단 배다 제공.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한 연극 ‘붉은 낙엽’의 한 장면. 극단 배다 제공.
‘연극계에서 번지는 유행을 쫓아가지 않고 정통 서사극을 추구하는 젊은 연극인.’ 올해 초 동아연극상 심사위원들은 그를 이렇게 평했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굵직한 상을 휩쓴 연극인이지만 그가 살아온 경로는 ‘정통 연극인’과는 거리가 멀다. 홍익대에서 영상영화를 전공한 그는 한때 영화감독을 꿈꿨다.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영화 ‘장례’는 미국, 유럽 등의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영화를 찍을 때 무엇보다 배우들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촬영장에선 배우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부족해요. 배우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2011년 국립극장 조연출 인턴을 시험 봤던 게 시작이 됐죠.”

연극은 무대에서 배우와 스태프가 부대끼는 장르다. 연습 때는 물론이고 마지막 공연의 커튼콜이 끝날 때까지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미술은 혼자 하는 작업이잖아요. 그러다보니 무엇이든 자기중심적이었고, 나만 알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근데 연극을 해보니 세상을 혼자 사는 게 아니란 걸 처음 깨닫게 됐어요. 다른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됐고요.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 기쁨에 공감하고자 노력하는 작업이라 보람도 있어요.”

그가 만든 연극은 쉽고 직관적이다. 복잡한 역사나 난해한 심리를 희곡이라도 이를 풀어내 무대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이 많다.

“희곡을 읽을 때 주를 이루는 개념을 뭔지 생각해요. 이 공연은 어떤 개념에 집중해 무대를 만들 것인지, 무대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요. ‘붉은 낙엽’에선 무대 자체를 중심 인물인 에릭의 심리적인 공간으로 설정했어요. 내면과 외부를 정원과 집이 중첩된 공간으로 만들어 에릭의 의심 대상인 아들이 그 주위를 맴돌 수 있게 했죠.”

‘붉은 낙엽’ 재공연 외 그는 올해에만 2편의 신작을 연출한다. 10월엔 우란문화재단과 함께 체르노빌 사건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을, 12월엔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연극 ‘파우스트’를 올린다. 특히 뮤지컬 연출은 처음이다.

“뮤지컬 연출은 처음이고, 많이 보지 못했던 장르거든요. 8월부터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하는데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역사극, 추리극, 심리극….

거침없이 장르를 넘나들며 연출해온 그의 최근 고민은 ‘연출가로서의 개성’이다. “원래 재미없다는 이야길 많이 들었거든요.(웃음) 근데 ‘왕서개 이야기’ 때부터 조금씩 재밌다는 이야길 해주셔서 놀랐어요.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극을 만들게 될 수록 창작자인 저의 색깔을 조금씩 잃어가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재미와 개성, 둘 사이에 중심을 잡는 게 아직은 참 어렵습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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