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완벽한 글쓰기? 더 나은 ‘실패’ 위해 계속 노력할 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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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폴 오스터 단독 인터뷰
50여년전 장만한 구식 타자기로 아침∼저녁 하루 11시간 글쓰기
에세이-서평 모은 산문집 한국 출간… 책 제목은 작가라는 업의 본질
“음식도 못 주고, 폭탄도 못 막지만 낯선 이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어”

폴 오스터
폴 오스터
오로지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 휴대전화도, 노트북도 없이 50여 년 전 장만한 올림피아 타자기로 지금껏 글을 써온 75세 노작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식사 시간 45분을 제외하고 11시간 남짓 꼼짝 않고 작업실에서 문장과 씨름하는 워커홀릭….

이달 30일 출간되는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열린책들)의 작가 폴 오스터(75)를 22일 단독 인터뷰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방금까지 새로 시작한 소설을 쓰던 중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글을 쓸 때면 언제나 길을 잃어요. 글을 쓰면서 답을 찾아나가죠.”

유대계 미국 작가인 오스터는 ‘뉴욕3부작’ ‘달의 궁전’ ‘빵굽는 타자기’ 등으로 유명하다. 간결하지만 섬세한 문장으로 정체성을 탐구하고 우연의 미학을 다뤄온 그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자주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7년 882페이지에 달하는 소설 ‘4321’을 낸 뒤 소설에선 한발 물러나 있었지만 에세이와 논픽션은 매년 꼭 한 편씩 냈다.

내달 한국에서 출간되는 폴 오스터의 산문집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오른쪽 그림은 폴 오스터가 27세에 친구에게 산 올림피아 
포터블 타자기. 화가 샘 메서가 2001년 오스터의 집에서 타자기를 보고 그려 선물했다. 오스터는 “컴퓨터로는 글 쓰는 맛이 안 
난다. 타자기는 세게 두드려서 쓰는 맛이 있다”고 말했다. 샘 메서 제공
내달 한국에서 출간되는 폴 오스터의 산문집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오른쪽 그림은 폴 오스터가 27세에 친구에게 산 올림피아 포터블 타자기. 화가 샘 메서가 2001년 오스터의 집에서 타자기를 보고 그려 선물했다. 오스터는 “컴퓨터로는 글 쓰는 맛이 안 난다. 타자기는 세게 두드려서 쓰는 맛이 있다”고 말했다. 샘 메서 제공


‘낯선 사람…’은 그의 에세이와 서문 등을 모은 산문집으로 미국에선 2019년에 출간됐다. 첫 장인 ‘굶주림의 예술’은 작가가 갖춰야 할 태도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그는 크누트 함순의 소설 ‘굶주림’, 프란츠 카프카의 ‘단식광대’를 통해 ‘예술가는 굶주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작가는 글을 쓰는 데에 내 모든 것을 다 갈아 넣어야 한다. 때로는 50페이지를 쓰고 몽땅 쓰레기통에 버릴 때도 있다. 하지만 내 모든 걸 다 바쳐 노력했다면 정직함의 균형을 이룬 것이다. 꼼수를 쓰지 않았다는 도덕적인 만족감이 있다”고 말했다.

사뮈엘 베케트, 조지 오펜 등 동시대를 산 작가들과의 만남을 담은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오스터는 베케트와의 일화를 떠올릴 땐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베케트와 두 번째로 만난 오스터는 그의 소설 ‘메르시에와 카미에’가 좋았다고 베케트에게 말했다. 이에 베케트는 “아니, 별로예요”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지만 5분 만에 베케트는 오스터에게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정말 그 작품이 좋았어요?”

“베케트조차 자기 작품에 확신이 없었던 겁니다. 나 역시 내 작품이 좋다는 확신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글을 쓰기 시작할 땐 ‘완벽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린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케트의 말대로 우리는 ‘좀 더 나은 실패’(fail better)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1만 km가 넘는 먼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연결한 전화선 사이에 누군가의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몇 차례 끼어들었다. 오스터가 말했다.

“아마도 화성인이 우리의 전화에 끼어드는 걸까요?”

전화의 잡음만으로 화성인을 떠올리던, 장난기 넘치는 일흔 다섯 소설가는 여전히 글쓰기에 목이 마르다. 미국 소설가 스티븐 크레인의 작품을 읽다가 그에게 빠져들어 800페이지에 달하는 전기 ‘버닝보이’를 지난해 출간했다. 미국 총기 문제를 다룬 논픽션 ‘블러드베스 네이션’은 올해 말 미국에서 출간된다.

“책 제목인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는 결국 작가라는 업의 본질이에요. 소설만이 낯선 이들이 완벽한 친밀감을 갖고 만나는 공간입니다. 소설은 굶는 아이에게 음식을 줄 수도, 폭탄이 터지는 걸 막을 수도 없지만 낯선 이들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그게 바로 책의 묘미 아닐까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폴 오스터#낯선 사람…#산문집 한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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