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 검사 출신 대통령 당선에 긴장하는 재계

  • 주간동아
  • 입력 2022년 3월 26일 09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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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수사팀장 시절 윤석열 당선인(왼쪽)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동아DB]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수사팀장 시절 윤석열 당선인(왼쪽)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동아DB]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던 분이 대통령이 됐으니 기업 처지에선 겁이 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재계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반응이다. 헌정사상 첫 특수부 검사 출신 대통령이 탄생하자 기업들 속내가 복잡해졌다. 안 그래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러 기업이 검찰 수사를 받으며 곤욕을 치른 기억이 생생한데, 최고 권력자가 기업 비리 수사로 잔뼈가 굵은 특수통 검사 출신이니 기업들의 불안이 커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거 오너가 검찰에 구속된 적이 있는 기업은 경험에 따른 일종의 트라우마가 작용해 걱정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기업도 정권교체기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 사정(司正) 타깃이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또 정부 정책이나 네트워크 측면에서 현 정부와 가까운 관계로 알려진 기업도 혹여 윤석열 정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긴장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기업 비리 엄정 대응 ‘검사 윤석열’


재계의 이런 반응이 마냥 기우(杞憂)일 수만은 없는 것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검찰 수사가 주로 대기업을 정조준했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국내 주요 기업과 ‘검사 윤석열’의 악연을 상기하며 사정 폭풍이 몰아칠까 우려하고 있다.

윤 대통령 당선인은 검사 시절 국내 1~3위 대기업 총수를 겨냥한 수사에 모두 참여했다. 2006년 정몽구 회장(현 명예회장) 구속을 불러온 현대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 당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검사였던 윤 당선인은 대검 중수부에 파견돼 수사를 맡았다. 수사 말미에 정 회장 구속을 두고 고심한 정상명 당시 검찰총장을 면담해 구속을 강하게 요구했다는 일화가 있다. 결국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 회장은 2008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다. 2012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기소가 됐을 때 윤 당선인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서 공소유지를 담당했다. 2014년 대법원은 최 회장에 대해 징역 4년을 확정했다.

2016년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을 맡은 윤 당선인은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하는 수사도 주도했다. 당시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재청구해 끝내 구속시켰다.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이던 2020년 6월 검찰은 삼성물산 합병 사건과 관련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상 부정 거래 및 시세 조종 등 혐의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징역 2년 6개월 실형이 확정돼 복역하다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검찰 내 이른바 ‘윤석열 사단’이 주요 수사 보직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기업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변수다. 검찰이 2019년 가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한 이후 윤 당선인과 갈등을 빚은 현 정부는 이듬해 초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을 통해 윤 당선인이 중용했던 수사 검사들을 대거 좌천시킨 바 있다. 당시 한직으로 밀려난 한동훈 검사장(사법연수원 부원장) 등 검찰 간부는 대부분 국정농단 수사나 기업 비리 수사를 함께한 경험이 많다. 새 정부 출범 후 이들이 대검이나 서울중앙지검 주요 보직에 포진한다면 대형 비리 수사가 재개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동훈 검사장은 2003년 대검 중수부 대선자금 수사팀,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수사팀, 2016년 국정농단 수사팀 등 대형 수사에서 윤 당선인과 호흡을 맞췄다. 윤 당선인과 대검 중수부에서 함께 수사한 윤대진 검사장(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의 인사에도 이목이 쏠린다. 윤 검사장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탈세 혐의, 효성그룹 총수 일가의 탈세 혐의 수사에 참여한 특수통이다.

검찰 내 ‘윤석열 사단’ 복귀할 듯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검찰 수뇌부 및 중요 보직에 대한 물갈이 인사가 이뤄질 경우 검찰 수사력이 대폭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지 수사 총량 자체가 늘고 검찰 칼날이 더 예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대선 정국에서 논란이 된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 등 주요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검찰이 손에 쥔 기업 수사도 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에는 현재 여러 기업이 연루돼 있다. 2015~2017년 두산건설, 네이버, 농협, 분당차병원, 현대백화점, 알파돔시티 등 기업들이 각각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 후원비와 광고비를 성남FC 측에 낸 대가로 토지용도 변경 및 용적률 인상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아직 새 정부 출범 전이라 명확한 수사 방향이 나온 것은 없지만 대선 공약이나 당선인이 밝힌 내용을 뜯어보면 대략적인 기조가 드러난다. 현재까지 윤곽을 드러낸 것은 ‘민정수석실 폐지’와 ‘시스템에 의한 수사’다. 윤 당선인은 3월 14일 국정개혁 과제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폐지를 천명했다.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당선인 집무실로 출근한 첫날의 일성이라 이목이 더 집중됐다. 윤 당선인은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政敵),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며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을 통해 검찰·경찰·국가정보원·감사원·국세청 등 사정기관을 ‘권력의 시녀’로 부린 폐단을 시정하겠다는 것이다. ‘검찰공화국’ 등장을 우려하는 여론을 잠재우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대선 후보 시절이던 2월 7일 윤 당선인은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이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며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대통령은 (수사에) 관여 안 한다”며 수사기관 독립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두 메시지의 공통점은 청와대가 수사에 관여하지 않고 수사기관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원칙적 태도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수사에 적용해보면 어떠한 ‘정무적 판단’도 배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검찰이 어떤 정치적 고려도 없이 철저히 비리 수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겠다는 취지인데, 새 정부에서 비리가 드러나 수사를 받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머리끝이 쭈뼛 서는 말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가운데)이 3월 21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재계 6개 단체장과 회동을 하고 있다. [동아DB]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가운데)이 3월 21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재계 6개 단체장과 회동을 하고 있다. [동아DB]


재계와 ‘허니문’ 이어질까


당분간 윤 당선인과 재계의 ‘허니문’ 기간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경제정책 추진, 일자리 창출 등에 기업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3월 21일 윤 당선인은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 재계 6개 단체장과 오찬 회동에 나섰다. 특히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재계 소통에서 사실상 배제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오찬 자리에서 윤 당선인은 “기업이 더 자유롭게 판단하고 자유롭게 투자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단체장들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기업 규제 완화’ 등을 건의했다.

과거 윤 당선인과 함께 수사한 경험이 있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기업 수사에 대해 “윤 당선인은 검사 시절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꼼꼼한 수사로 이름이 높았다”며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기업을 상대로 무자비한 수사 정국이 펼쳐질 것이라는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라고 말했다. 검사 시절 윤 당선인과 근무한 적이 있는 또 다른 변호사는 “윤 당선인이 누구보다 형사사법시스템의 중요성을 잘 아는 만큼 문재인 정부의 이른바 ‘검찰개혁’ 부작용을 정상화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자신의 측근 특수통 검사를 지나치게 중용하는 인사 방향은 사정 정국에 대한 우려를 부를 수 있으니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 대선 자금부터 국정농단 수사까지…검찰 수사와 ‘재계 잔혹사(史)’


재계에선 “정치권력과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해야 한다”는 말이 기업 생존과 직결되는 격언으로 회자된다. 살아 있는 권력과 척을 지면 수사기관의 철퇴를 맞을 수 있고, 반대로 지나치게 권력과 유착했다가는 다음 정권에 미운 털이 박힐 수도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국내 기업들은 참여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20여 년간 ‘재계 잔혹사(史)’를 겪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검찰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전격 구속기소했다. 최 회장은 그룹 지배권 확보 과정에서 1조5000억 원대 분식회계로 계열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후 대검 중앙수사부가 ‘불법 대선 자금 사건’ 수사에 착수하면서 재계 전반이 검찰의 수사 타깃이 됐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불법 대선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수사 결과 당시 검찰이 밝힌 불법 대선 자금 규모는 새천년민주당 113억8700만 원(삼성 30억 원, SK 10억 원, 현대차 6억6000만 원, 롯데 6억5000만 원 등), 한나라당 823억2000만 원(삼성 340억 원, LG 150억 원, 현대차 109억 원, SK 100억 원 등)이었다. 2006년에는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이 터져 정몽구 회장(현 명예회장)이 대검 중수부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재계를 향한 수사는 계속됐다. 이 전 대통령 취임 전 국회에서 통과된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팀’ 수사가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을 겨눴다. 2008년 9월 특검팀은 경영권 불법 승계 및 1000억 원 규모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이 전 회장을 기소했다. 이 전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이 확정된 후 2009년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특별사면을 받았다. 2013년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동생 최재원 부회장이 계열사 자금 45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각각 징역 4년, 징역 3년 6개월 실형을 확정받기도 했다. 이후 최 회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의 첫 수사 대상은 CJ그룹이었다. 2013년 7월 이재현 회장이 불법 비자금 조성 및 조세 포탈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 회장은 파기환송심 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박근혜 정부 말인 2016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이 전 대통령과 사돈 관계(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조카인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이 이 전 대통령 3녀와 결혼)인 효성그룹도 수사를 받았다. 2013년 9월 국세청은 조석래 명예회장 등 그룹 수뇌부를 탈세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이들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 포탈 등 혐의로 기소했다. 법정 공방 끝에 2020년 대법원은 조 명예회장의 탈세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고 법인세 포탈 및 상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파기환송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선 국정농단 수사에 여러 대기업이 연루됐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전 출범한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은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에게 경영권 승계를 도와달라며 뇌물을 건넨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했다. 이 부회장은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네고 면세점 특허를 청탁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됐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32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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