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속마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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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 호텔/아니 에르노 지음·정혜용 옮김/136쪽·1만3500원·문학동네

중증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의 증세가 급격히 악화돼 가는 와중에 딸은 정신없이 성(性)을 탐닉한다. 그것도 매춘이 이뤄지는 한 호텔에서 유부남과 말이다.

저자가 1998년 발표한 에세이인 표제작은 단순하게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문제의 딸인 저자는 해명한다. “쪼그라들어가는 어머니의 몸뚱이와 배설로 얼룩진 속옷의 이미지를 견뎌내려면 오르가슴이 필요했던 듯하다.” 갑자기 노인이 돼 버린 어머니의 모습은 강한 충격이었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더 강한 방어기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2011년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프랑스 최고 작가들의 작품을 묶어 내놓는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된 저자는 프랑스 현대문학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 책은 총서에 포함된 선집 ‘삶을 쓰다’ 중에서도 저자의 주제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난 작품 12편을 다시 추려낸 ‘선집의 선집’이다.

저자가 2002년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게재한 글 ‘슬픔’은 그해 별세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를 기리는 내용이다. 부르디외의 업적에 의례적인 찬사를 보내는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고 그의 글들이 자신의 집필 활동에 얼마나 큰 용기를 줬는지를 말한다. 지인의 결혼 전 축하연에 간 하루를 그려낸 단편소설 ‘축하연’은 특유의 직설적인 문체가 두드러진다.

직접 경험한 개인적이고 내밀한 사건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담아내는 저자의 작품 세계가 한 권에 응축돼 있다. 다만 자신의 경험을 폭로하는 수위가 매우 높고 감정 표현이 거침없어 일부 독자는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카사노바 호텔#아니 에르노#중증 정신질환#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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