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모호’ 영화? “호기심 자극해 다국적 관객 노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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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100% 촬영한 佛감독의 佛영화, 일본감독이 만든 한국영화
‘배니싱’ ‘브로커’ 등 잇달아 개봉… K 배우-제작환경 글로벌 호평속
외국 감독들 ‘한국서 작업’ 붐

‘배니싱: 미제사건’에서 한국의 경찰서 내부를 담은 장면(왼쪽 사진). 프랑스 영화지만 올가 쿠릴렌코(앉아있는 여성)외에 모두가 한국인이다. 오른쪽 사진은 애플TV플러스의 미국 드라마 ‘파친코’에서 1930년대 부산의 한 선창을  재현한 모습. 이 장면만 보면 한국 드라마 같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애플TV플러스 제공
‘배니싱: 미제사건’에서 한국의 경찰서 내부를 담은 장면(왼쪽 사진). 프랑스 영화지만 올가 쿠릴렌코(앉아있는 여성)외에 모두가 한국인이다. 오른쪽 사진은 애플TV플러스의 미국 드라마 ‘파친코’에서 1930년대 부산의 한 선창을 재현한 모습. 이 장면만 보면 한국 드라마 같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애플TV플러스 제공
빨간 벽돌집이 늘어선 주택가와 남대문시장, 서울 명동거리와 도심의 경찰서까지…. 영화 속 배경은 모두 한국이다. 주인공을 포함해 굵직한 배역 대부분을 유연석 예지원 최무성 등 한국배우들이 꿰찼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이하 배니싱)’은 언뜻 한국영화 같지만 한국영화가 아니다. 드니 데르쿠르 감독 작품으로 국내 영화사가 수입한 프랑스 영화다.

배니싱은 형사 진호(유연석)가 심하게 훼손된 변사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프랑스 법의학자 알리스(올가 쿠릴렌코)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알리스는 심포지엄에 참석하려 한국에 왔다. 그 결과 잇달아 발견되는 변사체는 장기 밀매 조직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사건 해결을 위해 의기투합한다.

영화는 100% 한국에서 촬영됐다. 서구권 영화가 모든 장면을 한국에서 촬영한 건 이례적이다. 데르쿠르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한국 촬영과 한국배우 출연을 염두에 두고 ‘추격자’ ‘살인의 추억’ 등 한국의 대표 범죄스릴러 영화를 참고했다고 한다.

데르쿠르 감독은 “한국은 영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며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만큼 한국에서 작업하는 건 모든 감독들이 꿈꾸는 일”이라고 밝혔다.

배니싱처럼 국적이 헷갈리는 영화는 또 있다. 현재 개봉시기를 저울 중인 ‘브로커’다.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을 맡아 일본영화라 생각하기 쉽지만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한국영화다. 출연 배우도 송강호 배두나 강동원 이지은(아이유)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스타들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무엇을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를 깊이 모색해 보고자 한다”며 연출 배경을 밝혔다.

과거엔 한국 스타 감독들이 해외로 진출해 현지 배우들과 현지 영화를 만드는 것이 대세였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가 대표적이다. 두 영화는 모두 미국영화다.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런 흐름은 조금씩 반대로 바뀌는 분위기다. 외국 감독이 한국에서 자국 영화를 찍거나 아예 한국영화를 만드는 식이다. 이에 따라 콘텐츠의 국적이 모호해지고 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한국배우들이나 한국 제작 환경이 그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 윤여정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영화 ‘미나리’나 그의 차기작으로 25일 공개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 역시 한국 콘텐츠로 여기게 만드는 미국 작품이다. 파친코에는 한국인 또는 한국계 배우들이 대거 나온다.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전 감독, 시나리오 작가 수 휴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다.

콘텐츠의 모호한 국적은 다국적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해 이들을 영화관 등으로 이끄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 배니싱 배급사도 이 영화가 프랑스 국적임을 내세우는 대신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점을 앞세워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작품이 결국 한국 관객이나 시청자들과 얼마나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정서적·문화적 장벽을 허물 수 있다면 ‘국적 모호’ 콘텐츠는 마케팅 측면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국적 모호 영화#다국적 관객#배니싱#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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