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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한국판 플럼북’ 도입해, 대통령 인사권 국민이 검증해야[동아시론/유상엽]

유상엽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입력 2022-03-11 03:00업데이트 2022-03-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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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권분립 무시, 인사권 남용해온 대통령들
총리·장관 권한 보장하고 야당도 존중해야
인사 범위와 자격 명확히 해 공개 필요하다
유상엽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유례없이 치열한 선거였다. 근소한 표차로 승패가 갈린 만큼 국민 통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됐다. 특히 172석의 민주당과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하느냐가 앞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아슬아슬한 승리와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새 대통령에게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진다. 그러나 자칫 권한을 남용하는 순간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1972년 미국 역사가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는 저서 ‘제왕적 대통령제(The Imperial Presidency)’에서 삼권분립의 정신을 벗어나 헌법이 정한 권한 이상을 행사하는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칭했다. 물론 역대 어느 대통령도 제왕적 대통령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비판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대통령 권한을 가진 나만 할 수 있다’는 독선과 ‘5년 안에 내가 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삼권분립 원칙을 무시하고, 특히 인사권을 남용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를 우리나라 통치구조에서 찾고 개헌에 답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주어진 인사권을 법과 원칙에 따라 사용하기만 해도 얼마든지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마침 법과 원칙을 강조한 윤 당선인이기에 다음과 같이 대통령 인사권을 행사할 것을 당부한다.

첫째,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무총리와 장관의 권한을 보장하자. 헌법은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해야 하는 국무총리에게 인사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은 핵심적 권한이다. 그러나 역대 어느 대통령도 국무총리에게 주어진 헌법적 권한을 충분히 보장해주지 않았다. 대독 총리, 허수아비 총리라는 오명을 받는 이유다. 인사제청권 및 해임건의권을 국무총리가 소신껏 행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통령의 제왕적 인사권을 견제할 수 있다. 또한 장관이 책임지고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장관에게 인사권한을 최대한 보장해줘야 한다. 소속 공무원들이 장관이 아닌 청와대만 보고 일을 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더는 나와서는 안 된다.

둘째, 대통령은 인사권 행사에 앞서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자. 법에 따라 주요 직위 인사는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치도록 돼 있다. 국회를 통해 대통령 인사권을 견제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법원장, 국무총리 등 일부 국회의 표결을 요하는 직위를 제외하고는, 국회의 동의가 필수조건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국회의 청문심사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음에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모습을 역대 정부에서 종종 보았다. 실제로 국회의 청문보고서 미채택 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노무현 정부 3건, 이명박 정부 17건, 박근혜 정부 10건, 문재인 정부 34건(2021년 12월 기준)이었다. 이렇게 대통령이 인사를 강행하는 사례가 늘어날수록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172석의 야당은 당장 초대 내각 구성에서부터 철저하게 인물 검증에 나설 것이다. 야당이 반대하더라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최대한 야당을 설득해야 하며, 설득에 실패하면 야당을 존중해 인사를 물리는 모습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 결과는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판 플럼북’을 통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투명하게 공개하자. 대통령 인사권한은 법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실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 범위는 그보다 넓다. 이러한 대통령의 비공식적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 연방정부 직책을 나열한 미국의 플럼북(Plum Book)을 참고해 ‘한국판 플럼북’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직위, 해당 직위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격요건 및 임명된 인사의 정보를 공개하면 수시로 대통령 인사권을 국민이 검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무자격자의 공직 임용을 최대한 막을 수 있고, 대통령 또한 제왕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한다는 우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내려놓겠다는 것은 여러 대선 후보의 공약이었고, 윤 당선인도 이를 약속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의 광화문 이전 등을 약속하기도 했다. 다만, 제왕적 권한을 내려놓는 핵심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막강한 인사권을 법과 원칙에 따라 행사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당선인이 명심했으면 한다.

유상엽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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