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틱 잡은 ‘펜싱 황태자’ 장동신, 韓 아이스하키 4강 이끌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0일 15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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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패럴림픽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 장동신.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 장동신.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이탈리아 킬러요? 인정합니다.”

‘검투사’ 장동신(46·강원도청)이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9일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2022 겨울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아이스하키 6강 플레이오프 이탈리아전에서 2골 1도움으로 팀의 4-0 승리에 앞장섰다. 역시 이탈리아와 맞붙었던 2018년 평창 대회 동메달결정전 때도 결승골을 넣었던 장동신이다.

장동신이 첫 골을 넣는 데는 3분 30초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이어 2피리어드 때는 깔끔한 ‘킬 패스’로 정승환(36·강원도청)의 쐐기골을 도왔다. 3-0으로 앞서던 3피어리드에 때는 이탈리아가 골리(골키퍼)까지 빼고 총공세에 나서자 페이스오프 직후 빈 골대를 향해 퍽을 띄워 보내며 추가점을 올렸다.

장동신이 쐐기골을 넣자 모든 선수가 일어나 2회 연속 패럴림픽 4강 진출을 자축했다.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통하는 정승환은 “마지막 골은 선수들도 깜짝 놀랐다”면서 “연습 때 열 번 시도하면 다섯 번도 들어가기 힘든 골이다. 10점 만점에 10점!”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 장동신(오른쪽).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 장동신(오른쪽).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반면 장동신은 “그저 웃이 좋았다”면서 쑥쓰러워했다. 그는 “첫 골은 득점을 노린 게 아니라 골대 쪽으로 던져 놓으려고 했는데 운 좋게 들어갔다. 2피어리드 어시스트도 (정)승환이가 마무리를 잘한 것”이라며 “마지막 골도 주장 장종호(38)가 페이스오프를 잘한 덕에 행운이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빼어난 득점력을 자랑하지만 장동신은 공격수가 아니라 수비수다. 평창 대회 때는 장동신과 함께 한국 수비를 이끌었던 한민수 한국 대표팀 감독은 “장동신은 자기 관리도 잘하고 책임감 있게 훈련에 집중하는 선수”라면서 “‘펜싱의 황태자’답게 순발력도 좋고 수비에서 믿음직한 팀 플레이를 해주는 선수”라고 평했다.

장동신이 ‘검투사’, ‘펜싱의 황태자’로 통하는 건 원래 휠체어 펜싱으로 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0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은 장동신은 2002년 부산 장애인아시아경기 남자 사브르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운동선수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 때도 에페 단체전에서 은메달, 같은 종목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휠체어 펜싱 선수로 장애인아시아경기에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낸 장동신.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휠체어 펜싱 선수로 장애인아시아경기에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낸 장동신.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이번 대회 4강에 진출한 한국은 11일 오후 1시 5분 A조 2위 캐나다와 준결승전을 치른다. ‘캐나다를 상대로도 골을 기대한다’는 말에 장동신은 “저는 디펜스(수비수) 20번 장동신입니다”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골 넣는 수비수도 좋지만 수비수는 무실점이 우선이다. 캐나다전 목표는 무실점이다. 그래야 우리 팀이 한 골만 넣어도 이긴다”고 강조했다.

캐나다는 비장애인 아이스하키뿐 아니라 장애인아이스하키에서도 강호다. 2018년 평창 대회 때도 은메달을 차지했다. 한국은 캐나다와 35번 맞붙었는데 아직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번 대회 A조 조별예선에서도 0-6으로 패했다.

장동신은 “펜싱도 하키도 ‘찰나의 싸움’이다. 펜싱이 찰나의 순간에 상대의 칼을 막고 나가 찌르듯이 하키도 빈틈이 보이는 찰나의 순간 상대를 제치고 패스를 줘야 한다”면서 “캐나다가 강팀인 건 사실이지만 그 찰나를 잘 노리면 승부는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찰나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애쓰겠다”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베이징패럴림픽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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