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은 떠나도, 시대의 지성은 책속에 살아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4일 10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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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야기: 너 어디에서 왔니/이어령 지음/432쪽·1만9000원·파람북
메멘토 모리/이어령 지음·김태완 엮음/244쪽·1만5000원·열림원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이어령 지음/332쪽·1만7000원·열림원

지난달 26일 별세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평생 베스트셀러 작가로 살아왔다. 한국 문화의 본질을 파고든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년), 일본 문화를 파고든 문화비평서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을 강조한 미래전망서 ‘디지로그’(2006년)…. 고인이 생전에 펴낸 책만 300여 권에 달한다. 그의 책을 찾는 독자들의 발길로 서점이 붐비는 이때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긴 저작 2권과 ‘아버지 이어령’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한다.


‘한국인 이야기: 너 어디에서 왔니’는 한국인의 탄생 문화를 파고든 인문학서다. 고인은 출산 전 태아에 태명을 붙이는 문화는 여러 나라에 있지만 한국에서 이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고 말한다. 서양과 달리 어머니 뱃속에 있는 시간도 한 살로 치듯 생명을 존중하는 한국인의 사상이 담겨있다는 것. 그는 갓난아기를 포대로 업는 어부바는 사랑과 정이 담긴 문화라고 강조하고, 돌잔치에서 아이가 집는 물건으로 아이의 미래를 점치는 돌잡이를 스스로 운명을 택하는 한국인의 특성이 반영됐다고 짚는다. 이처럼 고인은 우리의 일상에서 한국문화의 특수성을 포착해낸다.



이 책은 총 10권에 걸쳐 출간되는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고인은 2009년 이 시리즈를 계획한 뒤 암에 걸렸지만 집필을 포기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나빠지자 구술로 글쓰기를 이어갔다. 젓가락 문화, 인공지능(AI), 일제강점기에 대한 작품들이 연내 출간된다니 기대할 만하다.



병마와 싸우던 시절 고인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대화록 ‘메멘토 모리’를 펼쳐볼만하다.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걸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인 메멘토 모리는 고인의 좌우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1910~1987)이 세상을 떠나기 전 신부들과 이야기를 나눈 24가지 주제를 고인이 다시 꺼내들었다.

기독교 신자인 고인은 무병장수의 시대가 와도 사람들이 신을 믿을 것인지 묻는다. 또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죽음이라는 고통을 줬는지, 죽은 후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말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앞으로 출간될 총 20권짜리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의 첫 작품. 앞으로도 대화록 시리즈는 계속된다.



평범한 아버지로서의 고인이 궁금하다면 에세이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펼쳐보자. 딸 이민아 목사(1959~2012)는 시대의 지성인으로 바쁘게 살아온 아버지가 한때는 자식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선지 딸이 세상을 떠난 뒤 눈물과 회한 속에서 살아온 고인이 딸에게 바친 이 반성문은 절절하기 그지없다. 이 목사의 10주기인 3월 15일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 고인은 딸처럼 끝까지 항암치료를 거부했기에 부녀(父女)의 모습은 더 특별하다. 책의 서문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을 향한 유언처럼 느껴진다.



“이제 마음 놓고 울어도 된다. 그 눈물과 울음소리는 슬픔이 아니라 황량한 불모의 땅을 적시는 비요 겨울이 가고 꽃피는 봄을 노래하는 새소리가 됐으니까.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영혼이 달라진 게다. 선혈이 흐르던 상처가 아물고 그 딱지가 떨어진 아픈 살에서 새살이 돋는다. 찬란한 아침을 약속하는 굿나잇 키스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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