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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특파원칼럼/김윤종]마크롱이 원전 폐기 뒤집은 이유

입력 2022-02-25 03:00업데이트 2022-02-2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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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앞둔 프랑스, 원전 회귀 정책 논란
현실을 반영한 정책 수정도 리더의 덕목
김윤종 파리 특파원
14일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팡리. 영불해협이 보이는 이 마을 해변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평화롭게 서핑을 즐기는 청년들이 보였다. 인구 300명가량의 이 작은 마을은 최근 프랑스에서 갑자기 유명해졌다. 이곳에 2035년까지 차세대 유럽형 가압경수로(EPR)가 추가 설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해변 쪽으로 가보니 1990년 건립된 기존 원자력발전 시설들이 보였다. 영불해협 바닷물을 냉각수로 쓰는 1330MW급 경수로 2기가 설치돼 있다. 여기에 추가로 차세대 경수로 2기가 세워진다고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0일 “2028년부터 신규 원자로 6기 건설을 시작해 2035년에 새 원전을 가동시키겠다. ‘원전 르네상스’를 시작하기에 최적의 시기”라고 선언했다. 기존 원자로 폐쇄 계획을 중단하고 원자로 8기를 더 건설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기로 했다. 4월 대통령선거가 2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온 마크롱의 발표는 사실상 재선용 핵심 공약에 가까웠다. 현지 언론도 “전 세계가 에너지 대란을 겪는 중에 나온 마크롱의 승부수”라고 평가했다. 지역 주민들은 어떤 생각인지 궁금했다.

기자가 만난 팡리 주민 10여 명은 이구동성으로 “마크롱이 대선을 의식해 정책을 뒤집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7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주민 에리크 씨는 “원전 위험성은 잘 알지만 전기를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원전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마크롱은 2017년 대선에서 탈(脫)원전을 내세워 당선됐다. 프랑스 전체 전력의 75%를 담당하는 원전 비중을 50%까지 낮추겠다는 공약이었다. 이를 위해 운영 중인 원자로 14기를 점진적으로 폐쇄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5년 전 약속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대권 경쟁자들은 일제히 마크롱을 비판했다. 장뤼크 멜랑숑을 비롯한 좌파 후보들은 늘어날 핵폐기물과 안전성 문제를 지적했고, 원전 확대에 찬성하는 에리크 제무르 같은 극우 후보들은 ‘뒷북’ 정책이라고 비아냥댔다.

그럼에도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국민과의 약속을 거스르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여론조사기관 엘라브의 설문조사 결과 ‘풍력 태양열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원전은 폐기해야 한다’고 답한 프랑스인은 37%였다. 반면 ‘친환경에너지와 원전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응답은 53%에 달했다.

프랑스뿐만 아니다. 지난해 말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그해 초보다 최대 400% 폭등했다. 국제유가도 7년 만에 80달러를 넘어서면서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었다. 유럽연합(EU)이 이달 2일 원전 투자를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분류하는 그린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킨 배경이다.

다음 달 9일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도 후보들은 서로 다른 에너지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탈원전이냐, 원전 회귀냐. 친환경에너지 확대냐, 기존 에너지 체계와의 혼합이냐. 각각 장단점이 명확해 어느 것이 정답인지 단언하기 쉽지 않다. 누가 당선돼 어떤 에너지 정책이 시행될지 모른다. 다만 대통령이 되는 누군가는 국가의 리더라면 때로는 ‘약속을 뒤집었다’는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오류를 인정하고,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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