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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동아시론/김태기]정치권 무리한 추경 압박, ‘재정 후진국’ 앞당긴다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22-02-08 03:00업데이트 2022-02-0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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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한 달 앞둔 여야 추경 증액 요구
국제기구 재정 악화 경고 외면한 것
가계부채보다 정부부채가 더 문제
‘재정 포퓰리즘’ 계속돼서는 안 돼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새해 예산이 발효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여당은 추가경정예산을 요구했다. 여당 대선 후보의 강력한 의지 때문인지 기획재정부가 응하기는 했다. 하지만 14조 원을 넘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어서 당정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헌법(57조)에서 예산 증액은 정부가 동의해야 가능하다. 난관에 부닥친 여당은 ‘재정 쿠데타’ ‘기재부의 나라’ 등 듣기 민망한 말로 기재부에 비난을 퍼붓는다. 야당에서는 이런 거친 언사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역시 추경 증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선을 앞둔 여야가 추경 증액을 놓고 정부의 재정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의 일인 양 지켜볼 뿐이다. 어제 김부겸 국무총리는 “국회와 정부가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이 문제를 풀어야 할 때”라고 했다.

정치권력에 치인 재정의 난맥상은 문재인 정부 들어와 심해졌다. ‘곳간지기’ 기재부의 수난은 진보 성향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경제정책은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대통령은 정치권의 외압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정치 논리가 재정을 지배하면서 재정 확대의 약효는 그만큼 떨어졌다. 재정 지출을 매년 10% 가까이 늘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기 부양 효과는 줄어들어, 경제성장률은 2017년 3.2%에서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에 이미 2%로 뚝 떨어졌다. 또 공공 단기 아르바이트는 늘었지만 민간 일자리는 줄었고 임금 소득의 불평등은 커졌다. 세금 수입으로 재정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다 보니 나라 살림은 적자를 지속했고, 정부의 빚인 국채는 급속히 쌓여 금년에 1000조 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이러자 국제기구마저 한국의 재정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한국의 재정이 아직은 건전한 편이지만 재정 악화의 속도는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평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0년에 한국이 재정 악화 속도에서 그리스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1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의 증가 속도가 한국이 선진국보다 2배 빨랐고, 2026년이 되면 15.4%포인트로 압도적 1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라고 권고했다.

어떤 나라든 재정의 건전성은 그냥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은 재정 지원으로 유권자의 표를 얻으려는 욕구를 느끼고, 포퓰리즘이 설치면 재정 중독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재정 건전성을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만든다. 중앙은행 등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고 또 정부는 세금, 지출, 국채 발행 등에 대한 규범, 즉 재정준칙을 따르게 한다.

중앙은행의 독립과 재정준칙은 글로벌 규범이다. 재정준칙은 선진국을 비롯해 92개국이 헌법이나 법률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재정 건전성의 회복이 멀어 보인다. 여당은 재정준칙 도입에 소극적이었고, 이재명 후보도 재정 건전성에 관심이 적다. 당선되면 예산 편성권을 대통령 직속 기구에 넘기고, 긴급재정명령권도 발동해 코로나 재정 지원을 50조 원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외국 빚이 아니면 정부의 적자는 민간의 흑자이고, 나랏빚은 민간의 자산이라고 했다. 그나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임기 1년 내에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공약이 실현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권은 가계부채보다 정부부채를 먼저 걱정해야 한다. 개인과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정부가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국민도 재정 건전성의 악화가 미래의 문제일 뿐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정치가 나라를 재정 후진국으로 만들면 가계부채도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동학개미’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주식투자자가 폭증해 1000만 명이나 된다. 그러나 재정과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우려 때문에 주가의 하락 폭이 크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손해가 커지고 있다. 이런 마당에 돈을 풀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것은 정치권의 얄팍한 노림수에 불과하다. 재정 후진국으로의 전락을 막으려면 정부와 대통령은 물론 국회의 재정 권한도 법의 지배하에 두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재정의 책무성을 높여야 한다. 재정 포퓰리즘의 극복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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