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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영끌해도 티끌… 내집 마련이 뭐길래

입력 2022-01-29 03:00업데이트 2022-01-3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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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서영동 이야기/조남주 지음/244쪽·1만5000원·한겨레출판
집 샀다는 사람들은 흔히 ‘영끌했다’고 말한다. 영혼까지 끌어모으듯 최대한으로 대출을 받았다는 뜻이다. ‘내가 산 게 아니라 은행이 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2030 영끌족’이 수도권 아파트를 대거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한 온라인 기사를 보며 ‘서영동 이야기’ 마지막 장의 주인공 아영은 생각한다. ‘끌어모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영혼은 대체 어떤 영혼일까. 나는 영혼마저도 실속이 없네.’

아영처럼 영끌을 해도 티끌인 30대 초반의 시간제 강사가 있다. 반대로 부모를 잘 만나 영끌할 필요 없이 신혼 생활을 34평 자가에서 시작한 세훈도 있다. 승복은 영끌한 돈으로 부동산 사고팔기를 반복해 아파트 두 채와 건물 소유주가 된 두 남매의 아버지다. 25평 아파트에 영끌한 돈을 얹어가며 42평 아파트에 안착했지만 층간소음 갈등으로 온 가족이 고통받는 희진은 어떤가. 어딘가에서 본 듯한, 또는 나 자신과 비슷한 인물들이 서영동에 산다.

서영동 사람들이 고민하는 건 영끌로 살 수 있는 집만은 아니다. 이들은 내 집 장만을 위한 일상의 분투 속에서 몰염치함과 부끄러움을 생각한다. 끌어모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영혼은 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한 아영처럼 말이다. 부동산 투자라는 치열한 전쟁 앞에 내 영혼은 얼마나 깨끗한가. 이들은 집에만 목을 매느라 가족에게 소홀하고, 나보다 나은 집에 사는 타인을 시기 질투했던 자신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마주한다.

대출 이자를 갚는 서영동 사람들의 팍팍한 삶은 우리의 현실과 닮아 있어 익숙하다. 익숙하지 않은 건 팍팍한 삶을 살아내느라 우리가 잊었던 가치다. 그 가치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남동생에게만 집을 증여하려는 아버지를 미워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생업에 바빠 신경 쓰지 못한 사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 어렵게 마련한 42평 아파트에서 아랫집과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중학생 딸에 대한 미안함….

내 집 마련의 분투에서 출발한 책은 집 안에서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가족의 불행 앞에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내 집’의 안락함은 집의 평수와 시세 차익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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