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듯∼ 바다를 걷는 듯∼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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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아트로드]빛과 철의 도시 포항

경북 포항 환호공원에 지난해 11월 설치된 체험형 아트시설 ’스페이스 워크’. 롤러코스터 레일 위를 걸으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포항 영일만의 바다와 포스코 전경을 구경할 수 있다.
경북 포항 환호공원에 지난해 11월 설치된 체험형 아트시설 ’스페이스 워크’. 롤러코스터 레일 위를 걸으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포항 영일만의 바다와 포스코 전경을 구경할 수 있다.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이를 사랑하는 동네 경찰로 나오는 주인공 강하늘은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 그래서 흰 구름과 코발트색이 어우러진 바닷가 풍경이 충청도 서해안 어디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경북 포항시 구룡포항이었다.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도 빨간색, 흰색 등대가 예쁜 항구가 등장한다. 경제 개발을 이끌어 온 포스코의 제철산업 단지로만 알고 있던 포항에 이렇게 한적하고 아름다운 갯마을 풍경이 그대로 살아 있다니….

포항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를 닮은 지형 때문에 임인년 새해 일출맞이로 더욱 각광받는 곳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된 로맨틱 드라마의 촬영지이자, 포스코가 만든 아트 체험시설로 연인들의 ‘핫플레이스’ 여행지로 떠오른 포항을 찾았다.

● 영일만 뷰 맛집 ‘스페이스 워크’

포항 시내 영일만에서 북쪽으로 차로 10여 분 거리의 환호공원.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포스코 야경과 바다 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에 들어선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는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무중력 상태의 우주를 유영하는 듯, 롤러코스터 레일 위를 걸어 다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체험형 아트시설 작품이다. 개장한 지 두 달이 채 안 돼 11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았을 정도로 포항에서 가장 ‘핫’한 곳이다.

독일 작가 하이케 무터와 울리히 겐츠 부부가 디자인한 스페이스 워크는 트랙 길이 333m, 총 717개의 나선형 계단으로 이뤄진 작품. 포스코가 2년 7개월에 걸쳐 건립한 후 포항 시민들에게 기증했다. 100% 포스코 강재로 만든 구조물로 중앙의 360도로 돌아가는 루프 구간만 빼고 걸어서 다닐 수 있다. 작가는 “중앙의 루프 구간은 미학적으로 전체적인 형상의 중심이자 개념적으로는 닿고 싶지만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환호공원 언덕에서 만난 ‘스페이스 워크’의 첫인상은 하늘 위에 멋지게 휘갈겨 쓴 사인(sign)처럼 보였다. 각도에 따라 하트, 오메가 모양으로 끊임없이 변신하는데, 에어쇼에서 곡예비행의 구름처럼 자유로운 곡선의 향연을 펼친다. 롤러코스터의 레일 위를 걸을 때는 포항의 거센 바닷바람에 철제 구조물이 살짝 흔들린다. 아찔함을 느끼며 난간을 꼭 잡는다. 추운 날씨에 장갑은 필수다. 포스코에 따르면 동시 수용 인원은 최대 150명. 순간 풍속은 초당 80m까지 끄떡없고, 약 6.4∼6.5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포스코의 집약된 기술로 붕괴되지 않는 구조라고 하니, 난간을 꼭 잡고 한 계단 또 한 계단 오른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 순간 고개를 들어 보니 탁 트인 전망! 포항의 푸른 바다, 은빛으로 부서지는 영일만의 파도, 포항제철소 굴뚝의 하얀 연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밤에는 UFO 우주선이 내려온 듯한 환상적인 야경을 자랑한다.
밤에는 UFO 우주선이 내려온 듯한 환상적인 야경을 자랑한다.
어스름한 저녁에 스페이스 워크를 다시 찾았다. 호미곶 너머로 해가 지는 붉은 노을빛을 배경으로 가장 멋진 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얀색 조명으로 빛나는 모습을 보니 왜 이름이 ‘스카이 워크’가 아니라 ‘스페이스 워크’인지 알 수 있었다. 불시착한 UFO 우주선이나 외계 생명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포스코의 휘황찬란한 야경이 멋진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스페이스 워크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밤에 멀리서 보면 포항의 특산물인 대게나 문어가 산등성이에 올라탄 모습처럼 보인다. 스페이스 워크는 별도의 예약이 필요 없으며, 입장료는 무료다. 강우 강풍 등 기상 악화 시엔 출입이 자동 차단된다. 주말에는 1시간 이상 줄을 서기도 한다.

● 동백꽃 피는 갯마을 차차차

‘갯마을 차차차’ 촬영지였던 청하면 청하시장 내 청호철물점.
‘갯마을 차차차’ 촬영지였던 청하면 청하시장 내 청호철물점.
해돋이와 과메기로 유명한 포항 여행은 요즘 새로운 트렌드를 맞고 있다. 바로 ‘K드라마의 성지’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갯마을 차차차’(tvN), ‘동백꽃 필 무렵’(KBS2)에 나오는 아름다운 항구마을 촬영지가 바로 포항이기 때문이다. 둘 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 젊은 연인들이 자그마한 포구의 등대와 시장 골목을 찾아다니며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는 여행을 즐긴다.

조용했던 어촌마을인 포항의 북구 청하리는 ‘갯마을 차차자’를 본 국내외 팬들이 심심찮게 찾아온다. 청하 오일장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공진반점, 보라수퍼, 청호철물점, 오윤카페가 있고, 사방기념공원 정상에 놓여 있는 두식의 고깃배, 활공장이 있는 흥해읍 곤륜산, 구룡포읍 석병리 빨간등대 등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남자 주인공인 홍두식이 서핑을 한 월포해수욕장은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이 서핑이라는 게, 인생이랑 비슷해. 좋은 파도가 오면 올라타고, 또 잘 내려가고 파도가 너무 높거나 없는 날에는 겸허히 받아들이고.”(홍두식의 대사)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에 있는 까멜리아 커피숍.(왼쪽 사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에 있는 까멜리아 커피숍.(왼쪽 사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과메기로 유명한 구룡포항의 일본인 가옥거리는 요즘 ‘동백이 마을’로 더 유명하다. 강하늘과 공효진이 앉아 있던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계단,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여주인공 동백이(공효진)가 운영하던 ‘까멜리아’, 산동네 골목길에 있던 ‘동백이 집’에는 커플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드라마 속에서 ‘옹산 게장골목’으로 나왔던 이 거리를 특히 밤에 걸어보면 어디선가 주인공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일본인 가옥거리’는 1923년 일제강점기 시절 동해 최대의 어업 전진기지였던 구룡포항이 생기면서 일본인이 몰려들어서 형성된 거리였다. ‘까멜리아’도 일본식 가옥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드라마 속에서는 두루치기 전문 식당이자 술집이었지만 지금은 커피숍으로 운영 중이다. 커피를 시켜서 ‘동백빵’(치즈맛, 고구마맛)과 함께 먹으면 좋다. 까멜리아 안에는 동백서점, 동백오락실 등 드라마 속에 등장했던 배경까지 재현해 놓았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안녕하세요 동백 씨, 용식 씨∼” 하는 사장님의 인사가 낯설면서도 정겨운 느낌을 준다.

● 호미곶 해돋이와 구룡소 산책

포항은 빛과 철의 도시다. ‘영일(迎日)’이란 이름처럼 해돋이로 유명한 명소다. 그중에서도 호미곶은 대한민국 본토 최동단으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이다. 호미곶(虎尾串)은 조선 중기 풍수가 남사고(南師古·1509∼1571)가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이며, 백두산은 코, 호미곶은 꼬리에 해당하는 명당’이라 설명한 후 호랑이 꼬리로 불렸다. 임인년 검은 호랑이 해가 시작되는 설을 앞두고 호미곶 해돋이 광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바닷속에 설치된 조각 작품 ‘상생의 손’을 마치 내 손인 것처럼 각도를 조절해 사진을 찍는 것도 여행의 즐거운 추억이 된다.

이가리 닻 전망대
이가리 닻 전망대
월포해변에 있는 ‘이가리 닻 전망대’는 해송 숲과 기암괴석에 부딪치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하늘 위에서 보면 닻 모양을 하고 있다. 닻의 끝 부분에 있는 빨간 화살표는 252km 떨어진 독도를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동배리 해안길에는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구룡소(九龍沼)가 있다. 바닷물이 끊임없이 들이치는 거대한 바위 바닥에는 9개의 작은 웅덩이와 굴이 있다고 한다. 용이 승천했다는 하늘로 뻐끔하게 뚫린 굴의 아래로 흰 물보라가 거세게 밀고 들어오더니 왈칵 쏟아져 나간다. 용의 입에서 거친 연기를 뿜어내는 ‘용트림’이다.






포항=글·사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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