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이승헌]윤석열, 트럼프에 졌던 힐러리를 기억하라

입력 2022-01-25 03:00업데이트 2022-01-25 11:12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힐러리, ‘트럼프 불가론’ 의존하다 결국 패배
尹, 왜 자신이어야 하는지 절박한 설득 필요
AP/뉴시스
이승헌 부국장
“그래도 우리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인데 어떻게 이재명 같은 사람이 되겠나….”

얼마 전 만난 보수 성향의 전직 장관급 인사는 대선 판세를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의 열성 지지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보수 인사들 사이에서 자주 감지된다. 한 중견 정치학자는 “대한민국 역사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 했고,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결국 이기지 않겠느냐”며 국운(國運)을 종종 거론한다. 이쯤 되면 ‘이재명 불가론’이다. 근저에는 거부감, 멸시 같은 게 있다.

이 같은 정서는 7년 전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에서도 비슷하게 감지된 적이 있었다. 워싱턴에 ‘족보’도 없는 트럼프가 출마를 선언한 2015년 6월 16일 오전, CNN 앵커와 패널들의 웃음소리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백악관에 가겠다고 하네요. 호텔이 아니라 무슨 성(멕시코와의 국경 장벽)을 짓는다는데, 하하.” 필자는 ‘어떻게 너 같은 인간이 대통령에 도전하느냐’로 들렸다. 당시 오바마 시대의 주축인 엘리트 기득권층의 ‘트럼프 불가론’이었다.

공교롭게 둘 모두 막말 논란을 겪은 것도 비슷하다.

트럼프는 선거 막판 ‘음담패설 동영상’ 파문을 겪었다. 한 방송에서 여성 성기를 뜻하는 P가 들어간 막말을 한 게 뒤늦게 공개됐다. 다들 ‘저급한 트럼프의 실체가 드러났다’며 판세가 상대인 힐러리 클린턴으로 기울어졌다고들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남자들이 탈의실에서 하는 농담 아니냐”며 버텼다.

이재명은 윤석열 부인 김건희 씨의 녹취록 방송 이후 ‘형수 욕설’이 재소환되고 있다. 윤석열 측이 욕설 파일을 공개하자 논란은 다시 일고 있다. 이재명은 눈물까지 보이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렇다고 잘잘못을 떠나 선거 구도로만 봤을 때 이재명 욕설이 지지율 추이에 결정적 변수가 될지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이재명과 트럼프의 상황을 수평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비슷한 상대 후보와 그 주변을 둔 점은 공통점인 듯하다. 왜 자기가 집권해야 하는지 절박하게 설득하기보단 상대 후보 불가론에 더 의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극적으로 이준석과의 내분을 봉합했지만 그 후 왜 윤석열이어야 하는지 명쾌하면서도 절절하게 호소하고 있는가.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이런저런 공약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재명 되면 나라 망한다’를 넘어서는 담론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거론되는 게 윤석열로 일단 정권교체부터 하자는 ‘도구설’인데, 정권 교체 이후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니 윤석열 지지율이 정권교체 지지율보다 낮은 여론조사가 적잖다. 힐러리도 비슷한 오류에 빠졌다. 트럼프를 상대로 내놓은 캠페인 구호가 ‘Change maker’(변화 주도자)였다. 트럼프의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비해 하도 어정쩡해서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트럼프를 천박하다고 비난하다 정작 자기 선거 전략을 절박함 없이 대충 만든 것이다.

사실 이재명의 국정 비전도 도긴개긴이다. 하지만 정책 뒤집기든 말 바꾸기든 무엇을 해서라도 자신을 알리고 지지율 정체를 타개하겠다는 몸부림은 윤석열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윤석열 지지율이 다시 오르자 “실점만 하지 말자”며 ‘침대 축구’ 전략이 주변에서 거론된다고 한다. 대선까지 43일. 여론은 몇 번이고 더 출렁일 것이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