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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한강맨션 [횡설수설/홍수용]

입력 2022-01-24 03:00업데이트 2022-01-2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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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4월 서울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는 판잣집을 헐고 대규모 아파트를 빨리빨리 지으려던 무리수가 빚은 인재(人災)였다. 땅에 떨어진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를 끌어올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참사 11개월 뒤 준공된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이었다.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한강맨션 옥상에 있는 사각형 굴뚝이 랜드마크가 되고, 뒤이은 맨션아파트 분양은 단기 고성장 과정에서 쌓이고 쌓인 중산층의 주거 욕구를 해소하는 분출구가 됐다.

▷이처럼 고급 아파트 전성시대를 열었던 한강맨션이 재건축된다. 이 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최근 정기총회에서 GS건설을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했다. 건설사 측은 일단 설계대로 35층짜리로 짓지만 규제가 풀리면 68층으로 높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강변 최고층 아파트 등장 가능성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광주 고층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로 부실 공사 우려가 커진 지 열흘 만에 한강맨션이 대중의 관심사로 부각되는 상황이 50년 전과 비슷하다.

▷1970년대 한강맨션은 한국 주택시장의 흐름을 단독에서 아파트로, 소형에서 중대형으로, 후분양에서 선분양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명목상 사업 주체는 대한주택공사였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애초 대형 아파트 건축을 지시하고,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예매분양(선분양)’으로 건설비를 충당하도록 용인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파트의 질을 높이고 한정된 재원으로 공급을 늘리는 효과가 있었지만 고급아파트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고 투기의 빌미가 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강맨션에는 한국 주택시장의 명암이 녹아 있다.

▷아파트 재건축은 공급 확대와 집값 안정이라는 국민적 관심사와 직결돼 있다. 특히 한강변 층고 규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층수 규제를 풀면 공급이 늘어 가격이 안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아파트를 사려는 수요가 급등하면서 집값을 자극할 소지도 있다. 35층짜리로 짓느냐, 68층짜리로 짓느냐는 결정은 한강맨션뿐 아니라 향후 한강변 아파트 정책과 주택 규제 전반의 바로미터가 된다.

▷한강맨션 준공 당시 벽면의 회색 페인트칠은 입주자들의 희망을 반영한 ‘침착하고 점잖은 컬러’였다. ‘맨션 회색’이라는 별칭이 고급아파트를 상징할 정도였다. 지금 ‘회색 아파트’의 뉘앙스는 과거와 전혀 달라졌지만 서울 요지의 좋은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만은 여전하다. 한강맨션 재건축은 살고 싶은 곳에 집을 안전하게 많이 싸게 지어달라는 무주택자들의 요구와 이해관계가 겹치면서도 충돌하는 이슈다. 한강맨션에 떨어진 숙제는 5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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