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궈 “소련 붕괴, 맹목적인 ‘군사 확장’ 함정에 빠진 탓”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23일 13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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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국가 안보만 추구하면 큰 대가 치를 것”
학술지 최신호 기고서 중국 안보정책 우회 비판 주목

중국 정부의 외교정책 고문이자 중국에서 미중관계 석학 중 하나로 꼽히는 자칭궈(賈慶國·66)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가 국가 안보 위주로 흘러가는 중국 정부의 움직임을 비판하고 나섰다. 자 교수의 비판은 중국 내에서는 듣기 쉽지 않은 유명 인사의 정부에 대한 경고 발언이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2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자 교수는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이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학술지 ‘국제안보연구’ 1월호에 발표한 글에서 “소련 붕괴는 맹목적인 ‘군사적 확장’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라며 “절대적 국가 안보만 추구하면 결과적으로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 교수는 중국 공산당의 최대 국정 자문기구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회 상무위원이기도 해 그의 이 같은 발언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자 교수가 특히 소련을 언급한 것은 지난해 12월 26일 소련 해체 30주년을 맞아 중국 관영 매체들이 일제히 “사회주의를 배신한 뒤 붕괴한 소련의 교훈이 중국 사회주의 발전을 성공적으로 돕고 있다”며 “소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역설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중국 관영 매체들은 “소련의 붕괴는 사회주의를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배신했기 때문”이라며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 교수는 이번 발표에서 소련의 붕괴는 막대한 국방비를 쏟아 부으며 국가 안보에만 매달렸던 결과라는 주장을 펴면서 중국이 최근 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경고를 날린 것이다.

자 교수는 “국방비 지출이든, 공급망이든 절대적인 국가안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자멸적”이라며 “안보를 무제한으로 추구하면 비용의 급증과 이익의 급감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옛 소련이 장기적인 안보 정책을 무시하고 수 십 년 무력 확장에만 집중하다가 붕괴한 전형적인 사례”라며 “국방비 지출만 늘리다보면 국민의 삶은 개선되지 않게 되고 그로 인해 정치적 지지마저 잃게 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안보를 강조하는 이들은 국가가 안전하면 모든 목표가 성취되고 국민이 만족하게 되므로 국가안보를 국가가 추구해야할 유일한 가치로 본다”며 “그러나 안보 유지라는 단일한 목표는 기업들의 혁신과 개방을 위축시키고 결국에는 경제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안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중국을 비판하면서도 자 교수는 중국 당국의 어떤 정책에 반대하고, 어떤 정책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다. 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국가 안보 총론에는 동의한다는 점을 명시하면서 중국의 국가 안보 전략에 대한 포괄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중국 정부를 비판할 경우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SCMP는 “자 교수는 시 주석의 국가안보관에 경의를 표하며 글을 시작했지만, 해당 글은 매파적 관점에 대한 거의 노골적인 비판으로 가득 채워졌다”면서 “이 글이 중국 정부가 외교에서부터 빅테크에 대한 규제 강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국가안보에 대한 고삐를 바짝 죄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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