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간 만난 이주민 100명…공존은 이미 현실이다[히어로콘텐츠/공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22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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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그들과 우리가 되려면]

안양 YMCA에서 사진 동영상 편집 강의를 하고 있는 현식 씨.
안양 YMCA에서 사진 동영상 편집 강의를 하고 있는 현식 씨.
2007년 부모님을 따라 필리핀에서 한국에 온 기디연 씨(25)는 경기 안산시 안산원곡초등학교 출신이다. 5학년으로 입학했을 당시 외국인 학생은 한 반에 한두 명 정도였다. 그는 “외국인 학생이 적은데도 이중언어 선생님이 계시고, 별도의 한국어 수업이 있었다”며 “덕분에 힘들거나 적응이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다”고 했다.

기디연 씨는 관산중학교를 거쳐 특성화고인 안산 국제비즈니스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 때는 한자를 잘 몰라 국사나 문학 과목에서 애를 먹었지만 관심 있는 과목 위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특성화고에서 자신감을 찾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학생회장에 당선됐다. 학교 최초의 외국인 회장이었다.

그는 현재 한국외국어대 글로벌비즈니스·테크놀로지 학부를 다니고 있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마케팅에 관심이 많다. “국내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뒤 언젠가는 필리핀에서 한국 제품을 소개하는 이커머스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기자가 “한국에 살며 힘든 일은 없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가끔 길 가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 같은 말을 듣긴 하지만 어느 나라에나 조금씩 차별은 있지 않느냐”며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에 별로 상처받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학교를 다닐 때 결정적인 순간마다 저를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계셨다”며 “나중에 취업에 성공하면 찾아뵙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한국은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주는 나라였다.

‘공존’ 시리즈를 준비하며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사진 취재였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학교와 부모님에게 모두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안산원곡초 4학년 김세경 양은 부모님도 동의해주셨지만 지면 사정상 별도로 사진을 싣지 못한 취재원 중
 한 명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세경이는 원곡초 테니스부 소속으로, 프로선수를 꿈꾸고 있다. 집은 
시흥이지만 테니스부 때문에 안산까지 매일 30분씩 버스를 타고 등교한다.
‘공존’ 시리즈를 준비하며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사진 취재였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학교와 부모님에게 모두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안산원곡초 4학년 김세경 양은 부모님도 동의해주셨지만 지면 사정상 별도로 사진을 싣지 못한 취재원 중 한 명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세경이는 원곡초 테니스부 소속으로, 프로선수를 꿈꾸고 있다. 집은 시흥이지만 테니스부 때문에 안산까지 매일 30분씩 버스를 타고 등교한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지난해 8월부터 4개월가량 취재한 ‘공존: 그들과 우리가 되려면’ 시리즈가 21일 5회 ‘우리도 어딘가에선 그들이다’로 마무리됐다. 한국에서 외국인 주민 수가 가장 많은 경기 안산시를 들여다보면 인구절벽 시대를 맞은 한국의 미래가 보일 거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시리즈였다.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과, 그들과 공존하는 한국인의 상황을 최대한 그대로 담기 위해 취재기자 4명은 4개월 간 거의 매일 안산을 오갔다. 특히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얼굴과 실명을 공개할 수 있는 이들을 취재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얼굴, 실명 공개가 이주민과의 공존이 엄연히 현실로 닥쳤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피부로 느끼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직접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인터뷰를 한 사람만 100명 정도다. 전화로만 이야기를 듣거나 잠시 스친 취재원은 더 많다. 덕분에 기디연 씨처럼 기사에 담지 못한 취재원이 많다. 생업이 바쁜 탓에 도중에 연락이 끊기거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한 채 개인사까지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최종적으로 취재에 응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 모두 기사의 취지에 공감해 스스럼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줬다.

기자들이 만난 이주민들은 대부분 밝고 긍정적이었다. 힘들었던 기억을 털어놓을 때도 담담했다. 바뀌지 않는 법과 제도에 답답해 할 때는 있어도, 한결같이 “한국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시리즈 보도 후 온라인에서 쏟아진 독자들의 공감과 응원에서 그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이유를 확인했다. 물론 “자국민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주민과의 공존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았다.

한 독자는 이메일을 보내 “초등학교 시절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에서 살았는데, 차별이 없진 않았지만 정직한 노력을 기울이면 개인의 잠재력을 사회에서 펼칠 수 있다고 교육 받았다”고 했다. 이어 “이주민이라고 차별한다면 그 아동이 한국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출생률이 급감하는 상황에 이주정책에 대한 공론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2020년 발표한 ‘내·외국인 인구변화 전망: 2020~2040’을 보면 2040년까지 본인과 부모 모두 한국에서 태어난 내국인 수는 2020년 4956만 명에서 2040년 4734만 명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이주배경인구(귀화자와 이민자 2세, 외국인)는 2020년 222만 명에서 2040년 352만 명으로 늘어난다. 전체 인구 중 6.9%를 차지하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도, 사회경제적 상황도, 이미 공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공존’ 시리즈와 그에 따른 사회적 반향은 이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고 생각한다. 기사에 등장한 이리나, 제임스, 주디, 조나단, 아딜벡, 이고리, 유루티츠, 그리고 게오르기, 로자, 옥사나, 어티겅도야, 자야, 대성, 송이, 에코디르미야띠, 현식, 샤니, 아이라 씨, 만났지만 기사에 싣지 못한 기디연 씨까지. 2040년에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법과 제도가 그들과, 그리고 한국이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해주길 바란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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