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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들리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입력 2022-01-22 03:00업데이트 2022-01-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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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순례/사이토 하루미치 지음/김영현 옮김/287쪽·1만6000원·다다서재
저자는 음성(音聲)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다. 두 살 때 선천성 난청 진단을 받은 그는 학교에 입학하기 훨씬 전부터 듣기와 말하기 교실을 다니며 비장애인과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다른 아이처럼 어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모방할 수 없었던 저자는 좌절을 겪는다.

말의 높낮이, 박자, 발음…. 비장애인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말의 요령을 체득하지만 저자에겐 말하는 매 순간이 ‘발음 시험’만 같았다.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해도 그에게 돌아오는 건 발음에 대한 칭찬 혹은 조롱뿐이었다. 말을 건넬 때마다 상대의 반응을 살펴야 했던 그에게 대화는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닌 그나마 발음할 수 있는 단어들을 조합한 문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던 저자의 태도가 달라진 건 사진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사진가가 된 저자는 발음 기관을 통해 내는 소리가 아닌 다른 형태의 ‘목소리’를 찾게 된다. 각자 다른 장애를 가진 몸을 격렬하게 부딪치는 장애인 레슬러들, 긴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다운증후군 아이, 눈썹을 일그러뜨리는 표정으로 뉘앙스를 전하는 자폐증에 걸린 소년을 찍었다. 저마다 다른 몸을 가진 이들이 자신이 가진 감각을 동원해 타인과 교류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들어야 한다”는 오랜 강박에서 차츰 벗어난다.

대화의 수단이 목소리라면 목소리는 반드시 음성이 아니어도 된다. 눈빛, 표정, 감촉, 호흡 등 다양한 감각도 목소리가 될 수 있다.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다름을 서로 받아들이면서 관계를 맺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들을 수 없었기에 더욱 타인에게 귀를 기울였던 저자의 삶은 ‘목소리 순례’ 그 자체였다. 듣는 대신,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감각을 사용해 타인과의 교류에 성공한다. 주로 일부 신체 기능을 활용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사실 이 책은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우리 모두를 위해 쓰였다. 열린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폭포수처럼 쉼 없이 흘러내리는 감각의 세계를 느끼지 못하는 건 어쩌면 우리일 수 있겠다”(소설가 김연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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