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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슈만이 일깨운 그리그의 독창성[클래식의 품격/나성인의 같이 들으실래요]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입력 2022-01-18 03:00업데이트 2022-01-1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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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때때로 존경 어린 경쟁심은 작곡가들에게 놀라운 창조력을 불어넣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노르웨이의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의 유일한 피아노협주곡 역시 그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그는 14세에 불과하던 1858년 클라라 슈만이 연주하는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의 연주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이 일이 기폭제가 되어 그는 계속 작곡에 매진한다. 이후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카를 라이네케의 제자로 유학하면서 그는 주제의 탄탄한 발전을 지향하는 독일 교향악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멘델스존의 향기가 짙게 남아 있는 이 도시에서 그는 많은 음악적 발전을 이룬다. 그 후 그리그는 로마에서 당대 피아노의 거장이었던 프란츠 리스트를 만나게 되었는데 리스트는 그리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피아노협주곡을 한번 써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당시 24세에 불과했던 그리그는 1868년 곡을 완성하고 이듬해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초연하게 된다.

슈만이 피아노협주곡을 쓸 당시 아내 클라라와 결혼했었던 것처럼, 그리그 역시 이 곡을 쓸 때 그의 아내가 된 니나 하게루프와 갓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조성도 같고, 곡을 여는 방식도, 그 색채감 등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슈만과 그리그의 협주곡은 곧장 비교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모티브의 분화 및 확장을 기본으로 하는 슈만의 곡과 달리 그리그의 협주곡에는 노르웨이의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한 서정성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아노 협주곡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그리그는 노르웨이적인 색채를 잃지 않으면서도 대가적인 작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서정적 모음곡’이나 극음악 ‘페르귄트’ 그리고 북구적 서정성이 물씬 풍기는 그의 다른 관현악 작품들이 그것이다.

슈만의 영향과 그리그의 독창성. 음악적 자극과 이를 소화해낸 작곡가 스스로의 능력. 이러한 면이 제대로 부각되어야 좋은 스승과 제자, 좋은 라이벌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그리그는 슈만에게 개인적으로 배운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의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 생산적인 자극을 많이 얻어낸 ‘좋은 학생’이었다. 작품이 스승이 되는 사례는 음악사에서 자주 발견된다. 바흐의 ‘평균율’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에게 그러했고, 베토벤의 교향곡 또한 슈만과 멘델스존, 브람스에게 이정표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죽은 작곡가의 살아있는 음악을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해주는 숱하게 많은 공로자들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그의 경우에는 슈만의 음악을 알려준 클라라의 연주가 결정적이었지만 학자, 기획자, 그리고 진지한 감상자가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예술계는 그런 문화 전달자를 필요로 한다.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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