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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김창덕]지주사의 첫 CVC 설립, 벤처 생태계 훈풍 불까

입력 2022-01-18 03:00업데이트 2022-01-1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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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산업1부 차장
국내에서 기업주도형벤처캐피털(CVC) 자회사를 설립한 첫 지주사가 GS㈜라는 건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GS그룹 총수가 허태수 회장(65)이라서다.

허 회장은 현재는 GS리테일과 한 몸이 된 GS홈쇼핑에서 17년간 일했다. 최고경영자(CEO) 재임 기간만 13년이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2017년 8월 GS홈쇼핑의 스타트업 관련 글로벌 행사가 열린 싱가포르 센토사섬이었다. ‘벤처’라는 화두에 유난히 반짝이던 허 회장의 눈빛이 선하다. 그는 GS홈쇼핑 신사옥을 짓기 전인 2011년 혁신 기업들의 일터가 궁금해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때 사옥보다는 벤처 투자에 매료됐다. 허 회장은 귀국 후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고 한다. GS홈쇼핑은 이후 벤처 투자와 CVC 운용을 가장 잘하는 국내 기업 중 한 곳이 됐다. 직접 투자한 스타트업만 40개 안팎에 이르고 25개 투자 펀드에 투입한 돈까지 합하면 투자금은 9500억 원에 이른다.

허 회장은 2019년 12월 그룹 총수로 자리를 옮기자 곧바로 지주사에 벤처 투자 DNA를 이식했다. 이듬해 7월 국내 법 적용을 받지 않는 미국에 해외기업 투자 목적의 ‘GS퓨처스’를 만든 것이다. 그러곤 이달 7일 자본금 100억 원짜리 CVC ‘GS벤처스’를 설립했다. 지난해 말 국내에서도 지주사 CVC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일주일여 만이다.

그룹 총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만큼 GS벤처스는 매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일 게 분명하다. 2020년 7월 공정거래법 개정 방침이 나왔으니 준비 기간도 충분했다. 첫 투자도 빠른 시간 내에 이뤄질 수 있다.

지주사 CVC로부터 투자받은 스타트업들은 그룹 계열사 수십 곳을 단번에 우군으로 확보할 수 있다. 돈도 돈이지만 대기업과의 협업 지점이 확대되는 게 큰 선물이다. 잠재 고객이면서 안정적인 거래처가 될 수 있어서다.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을 기회도 생긴다. 일반 벤처캐피털 자금을 쓸 때보다 단기성과에 대한 압박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CVC를 자회사로 둔 지주사로서도 전 계열사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려하기에 훨씬 다양한 종류의 스타트업들을 검토 대상에 올릴 수 있을 거다. 그만큼 양쪽 모두에 장점이 많다.

GS벤처스는 그만큼 GS그룹의, 또 투자금이 절실한 스타트업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책임도 크다. 지주사 CVC로서의 ‘첫 주자’로 나선 만큼 후발주자들이 도전 시기와 투자 규모를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수 있어서다.

이미 여러 지주사가 CVC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벤처업계로서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사상 유례없이 벤처에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지만, 이른바 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가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달리기 때문이다.

‘금산 분리’라는 대원칙 때문에 오랫동안 막혀 있었던 지주사 CVC가 어렵사리 첫발을 내디뎠다. GS벤처스가 벤처업계에, 그리고 대기업들의 투자 풍토에 새바람을 일으켜주길 바라는 사람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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