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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신규진 기자의 국방이야기]‘경계신화’ 스스로 만든 군의 자승자박

입력 2022-01-18 03:00업데이트 2022-01-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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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육군 중장)이 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철책 월북’ 사건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며 사과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신규진 기자
“1분 20초였어요.”

최근 전방부대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얘기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1분 20초는 탈북민 김모 씨(30)가 새해 첫날 강원 고성군 최전방경계부대(GOP) 철책 두 개를 넘는 데 걸린 시간. 분통이 터진 건 이 짧은 시간에 군이 이걸 ‘어떻게 막겠느냐’는 답답함의 토로였다.

2020년 11월 기자는 동부전선에서 철책을 직접 본 적이 있다. 당시 김 씨가 동일한 방식으로 GOP 철책을 넘어 귀순한 직후였다. 일반인이라면 월책(越柵)할 엄두도 못 낼 3m 높이의 철책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김 씨는 1일 오후 6시 36분경 철책을 기어오른 뒤 철책 상단 윤형철조망을 뛰어넘었다. 월책 당시 철책 감지센서(광망) 경보가 작동해 6명의 초동조치조가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그는 이미 4분 전 자취를 감춘 뒤였다. 철책을 넘을 때 하단을 절단하거나 상단에 모포를 얹어 미끄러져 내려가는 ‘수고’조차 필요 없었다. 말 그대로 ‘훌쩍’ 맨몸으로 철책을 뛰어넘었다. 기계체조 경력을 지닌 김 씨의 기막힌 점프력을 감안해도 사석에서 만난 군 관계자들이 “상식 밖의 일”이라 할 만했다.

물론 이런 김 씨의 ‘초인적’인 능력이 군에 면죄부가 될 순 없다. 이번에도 군의 경계 실패 정황은 명백하게 드러났다. 곳곳에서 경계시스템의 허점을 노출했다. 전방 근무자들은 김 씨가 철책을 기어오르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를 보지 못했다. 경보가 울린 뒤에는 엉뚱한 CCTV 화면을 되돌려봤다.

군은 문재인 정부 들어 이번을 포함해 벌써 일곱 차례나 굵직한 경계 실패로 고개를 숙였다. 앞서도 매번 후속 대응을 약속했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책임 있는 자들’이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근무기강을 바로 세우고 시설을 보완하고 장비를 개선하겠다며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이번엔 이런 군의 ‘철통 방어 약속’을 믿어도 될까. 당장 일선 군부대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지난해 한 해 군이 경계 보강을 위해 투입한 혈세는 28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12월에만 군 수뇌부는 경계근무 강조 지시를 네 차례나 내렸다. 서욱 국방부 장관, 남영신 육군참모총장 명의의 ‘연말 공직기강 확립활동 강화 지시’ 최상단에는 ‘경계 및 대비태세 확립’이 적혀 있다. 이런데도 새해 벽두부터 경계에 실패했다. 경계실패 문제와 군 차원 대국민 사과의 무한 반복은 대응 방안을 처음부터 잘못 들고나왔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최근 군 내부에선 ‘자포자기’ 분위기까지 팽배해졌다. 지난해 2월 ‘오리발 귀순’ 직후 열린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육군 관계자들의 내부 대책회의에선 “대안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 지능형 CCTV 등 인공지능(AI) 장비 도입을 포함한 ‘과학화경계시스템 성능개량 사업’이 2026년경에야 완료되니 5년의 공백기는 그냥 버텨야 한다는 자조까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군이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보고 있는, 현재 서해와 남해 일부 해안지역에 시범도입 중인 AI 경계시스템은 피아식별(彼我識別) 가능 수준에 도달하려면 갈 길이 멀다.

전방에선 8, 9대의 과학화장비 모니터를 근무자 한 명이 지켜본다. 하루 수십 차례 ‘잘못된 경보’ 속에서 침투 혹은 귀순, 월북 인원을 가려내야 하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입대인원 감소와 맞물려 벌어지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밑에서부터 풀어나갈지 고민부터 필요하다는 얘기다.

군이 지키지도 못할 ‘완벽한 경계’ 신화부터 스스로 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수장들은 2019년 6월 북한 어선(목선)의 ‘삼척항 노크 귀순’을 시작으로 일곱 차례 경계 실패 직후 다섯 번이나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창궐 당시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은 과학화경계시스템을 들고나오며 “멧돼지도 뚫고 올 수 없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체조선수 출신’ 김 씨가 가볍게 넘었다. 군 내부에선 몸을 던져 큰 구멍만 임시로 막고 보려는 기조부터 버려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벌어진 틈을 꿰매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의 해결 불능 상태는 철통경계 신화를 스스로 만들고 별다른 대안 없이 이를 지키지 못한 군이 자초한 바임을 직시해야 한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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