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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천광암 칼럼]‘퍼주기 주도 성장’으로 5대 강국 간다는 이재명의 몽상

입력 2022-01-17 03:00업데이트 2022-01-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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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신경제 1·5·5
YS 신경제+MB 7·4·7 연상시켜
욕심만 앞선 무리한 목표 제시
퍼주기 병행 땐 PIGS 꼴 날 것
천광암 논설실장
문민정부를 표방했던 YS가 경제 분야에서 내걸었던 구호는 ‘신경제’다. 임기 초부터 신경제 100일 계획,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연이어 내놨다. 1995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고 이듬해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 성사되자, YS정부는 신이 났다. 하지만 작은 성공이 대재앙의 단초가 됐다. 때 이른 선진국 행세는 임금 물가 부동산가격 등을 끌어올려 거품을 잔뜩 키웠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지키기 위한 저환율 정책은 외환 유출을 가속화시켰다. 그 불행한 대단원이 1997년 국가부도였다.

이처럼 YS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신경제’ 캐치프레이즈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들고나왔다. 이 후보는 11일 ‘신경제 비전 선포식’을 갖고 “이재명 신경제의 목표는 종합국력 세계 5강의 경제대국”이라고 밝혔다. 이어 12일에는 1·5·5공약(수출 1조 달러, 국민소득 5만 달러, 글로벌 G5 시대)을 제시했는데, 여기서는 MB의 7·4·7공약(연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좌파 이미지 탈색에 명운을 걸다시피 한 이 후보가 우파의 정책 창고에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쓸어 담는 사정은 알겠지만, 신경제나 7·4·7처럼 실패한 아이콘까지 재활용하는 것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비단 명칭의 문제가 아니다. 영혼 없는 ‘우파 성장론 코스프레’를 하다 보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욕심냈던 신경제나 7·4·7의 과오까지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력을 잴 때 가장 일반적으로 쓰는 것은 국내총생산(GDP)이다. 한국의 현재 순위는 세계 10위다. 이 후보가 경제 5강 진입을 본인 임기 중에 달성하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했으니, 넉넉히 2030년을 기준으로 잡아보자. 영국의 경제경영연구센터가 전망한 2030년 한국의 예상 순위는 중국 미국 인도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브라질 캐나다 러시아에 이어 11위다. 러시아 캐나다 브라질 프랑스 영국은 물론이고 GDP가 한국의 2.3배에 이르는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 독일까지 제쳐야 넘볼 수 있는 자리가 경제 5강이다. 이 후보에게 이런 ‘기적’을 일궈낼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가.

이 후보는 신경제 비전 선포식에서 5강 실현을 위한 전략으로 과학기술·산업·교육·국토 등 4대 대전환을 제시했지만, 뜬구름 잡는 이야기다. 그가 실제로 향후 5년 한국 경제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는, 구체성 없는 미사여구 몇 마디보다는 평소 강조해온 핵심 공약이나 현실 속의 행보에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이 후보가 지금까지 가장 공을 들여온 간판 공약은 기본소득 기본금융 기본주택 등 기본 시리즈와 토지이익배당제다. 지금까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어떤 나라에서도 해보지 않은 매머드급 퍼주기 정책들이다. 이런 공약을 폐기하지 않고 5대 강국을 가겠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보다 더 황당한 ‘퍼주기 주도 성장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후보가 퍼주기 공약들을 정리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하겠다”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이 후보의 ‘퍼주기’ 본능은 대형 공약이 아닌 ‘소확행’ 공약 등에서도 나타난다. 탈모치료약 건강보험 적용 공약이 대표적이다. 건강보험 재정 부담 따위는 안중에 없다.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도 비슷하다. 반대 여론을 의식해 스스로 접었던 전 국민 재난지원금도 잊을 만하면 한번씩 꺼내든다. 말 안 듣는 기획재정부에서 예산 기능을 떼어내 청와대나 국무총리실로 가져가겠다는 구상도 내비쳤다. 퍼주기 정책에 장애물이 되는 것은 다 치워버리겠다는 섬뜩함마저 엿보인다.

퍼주기 정책은 막대한 국가부채에 의해서만 뒷받침될 수 있다. 이 후보에 비하면 소소해 보이는 문재인 정부의 퍼주기 5년 만으로도 660조 원이던 국가부채가 1064조 원으로 늘어났다. 막대한 빚으로 성장과 복지를 떠받치는 경제의 말로는 자명하다.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가 단적인 예다. PIGS는 2010년 심각한 부채위기를 겪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포퓰리즘과 재정위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퍼주기 공약에 대한 대수술이 없는 이재명의 ‘신경제 1·5·5’는 허황된 몽상일 뿐이다. 또한 PIGS의 실패를 그대로 뒤따르는 길이기도 하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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