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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흔한 풍경이 된 ‘토종 덩크’… 원조는 1978년 조동우

입력 2022-01-14 03:00업데이트 2022-01-14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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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출로 연습때 성공
1983년 207cm 한기범 ‘공식 2호’
90년대 문경은-정재근 아직 회자
전희철-현주엽 ‘파워 투핸드’ 각광
조동우
1990년대 농구 열풍에 불을 지폈던 드라마 ‘마지막 승부’(1994년)의 최종회는 주인공 윤철준(장동건 분)이 라이벌 대학과의 결승전에서 종료 직전 역전 덩크슛을 꽂고 해피 엔딩으로 끝맺음을 한다. 당시만 해도 덩크슛은 국내 경기에서 보기 드문 고난도 기술. 같은 대학에 가려던 ‘절친’의 배신 등으로 농구를 포기했던 주인공이 다시 일어나 팬들의 숨을 멎게 하는 덩크슛으로 인생 최고의 정점을 찍는 순간을 연출하면서 더 극적인 감동을 줬다.

이번 시즌 프로농구에서는 그 시대에는 상상하지 못한 토종 선수들의 덩크슛 릴레이가 펼쳐지고 있다. 특히 SK 최준용(200cm)과 KT 하윤기(204cm)의 슬램덩크는 외국인 선수들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수준이다. 12개로 국내 선수 중 1위인 최준용은 달리는 스피드를 살려 왼발을 디딤발 삼아 터뜨리는 원, 투 핸드 덩크슛이 압권. 11개로 2위인 하윤기는 고무공 같은 탄력으로 제자리 점프(76.2cm)를 살려 수직으로 올라 림 한참 위에서 내리 꽂는다. 외국인 센터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8일에는 속공 패스를 받아 점프한 채 공을 머리 뒤쪽으로 돌려 내리 꽂는 ‘윈드밀’ 덩크슛도 선보였다. 둘은 16일 열리는 프로농구 올스타전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자웅을 겨룬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덩크슛을 시도한 선수는 누굴까. 1960년대 국가대표 출신으로 실업팀과 남자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김인건 전 태릉선수촌장은 “이창수(KBL 경기분석관)의 부친 이출로 씨가 1960년대 농협에서 선수로 뛸 때 장충체육관에서 레이업슛 연습을 할 때 덩크슛을 한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경희대 출신 센터로 42세까지 현역으로 뛴 이창수 분석관도 프로농구 무대에서 한 차례 덩크슛을 기록했다. 아들인 신인 이원석(삼성)도 이번 시즌 2개의 덩크슛을 터뜨렸다. 덩크슛을 경험한 첫 농구인 ‘삼대’인 셈이다.

공식 경기 첫 덩크슛은 1978년 11월 추계대학연맹전에서 연세대 센터 조동우가 국민대전에서 기록했다. 1983년 3월 춘계대학연맹전에서 ‘원조 골리앗’ 중앙대 한기범(207cm)이 경희대전에서 두 번째 덩크슛을 꽂았다. 당시만 해도 꽂는다기보다 밀어 넣는 수준이었다.

문경은
1990년대로 접어들어 대학 선수들의 장신화가 이뤄지면서 시원한 덩크슛이 자주 나왔다. ‘람보 슈터’ 문경은 전 SK 감독은 연세대 시절인 1994년 1월 농구대잔치 고려대전에서 일명 ‘빽덩크’라고 불리는 리버스 덩크슛을 선보이며 오빠부대 소녀 팬들을 열광시켰다. 문 전 감독의 덩크슛은 다음 날 거의 모든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했다. 그해 ‘저승사자’ 정재근이 상무 소속으로 ‘공룡 센터’ 연세대 서장훈을 앞에 놓고 터뜨린 원 핸드 덩크슛도 자주 회자된다.

전희철
고려대의 더블포스트 전희철(현 SK 감독)과 현주엽이 선보인 투 핸드 덩크슛은 점프의 탄력과 파워에서 변화의 시작점이다. 2000년 이후 김주성-이승준-김민수-김종규(DB) 등으로 ‘아트 덩커’의 계보가 이어졌다.

현주엽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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