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걸그룹 기획-제작, 이젠 ‘언니’들이 맡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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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JYP-GLG 등 대형기획사, 여성 기획자 앞세워 신인 키워
“K팝계 성인지 감수성 향상 기대”

f(x)의 빅토리아, 슈퍼주니어-M의 헨리 등을 캐스팅했고 현재 걸그룹 ‘하이키’를 지휘하는 황현희 GLG 이사(왼쪽), f(x)와 레드벨벳의 시각 콘셉트를 만든 SM 출신의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오른쪽). GLG·하이브 제공
f(x)의 빅토리아, 슈퍼주니어-M의 헨리 등을 캐스팅했고 현재 걸그룹 ‘하이키’를 지휘하는 황현희 GLG 이사(왼쪽), f(x)와 레드벨벳의 시각 콘셉트를 만든 SM 출신의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오른쪽). GLG·하이브 제공
여성주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케이팝에도 우먼파워가 떠오르고 있다. 아이돌 그룹 멤버를 넘어 기획과 제작에 여성들의 입김이 커지고 있다. 중대형 기획사들이 잇달아 신인 여성그룹을 내는 올해가 가요계에서는 젠더 균열의 원년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두주자는 민희진 어도어(ADOR) 대표이사(43)다. 어도어는 방탄소년단을 제작한 하이브가 신설한 산하 레이블로 올해 하이브의 신인 걸그룹 데뷔를 맡는다. 민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 출신으로 소녀시대, f(x), 레드벨벳의 뮤직비디오, 앨범디자인을 아우르는 시각적 콘셉트를 기획하며 2010년대 이후 케이팝 걸그룹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간 가요계에서 여성이 음반사나 레이블의 수장을 맡은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더구나 하이브라는 매머드 회사의 간판에 여성이 자리한 것은 케이팝 업계에 사건이다.

원더걸스, 트와이스, 있지를 배출한 JYP엔터테인먼트도 올해 여성 파워를 내세웠다. 다음 달 내는 신인 걸그룹 제작을 지휘하는 이는 JYP 최초의 여성 사내이사인 이지영 아티스트 4본부장(43). 이 본부장은 트와이스의 정연 사나 지효 쯔위 등을 발탁하고 훈련시킨 인물이다. 그간 여러 영상매체에서 남성인 박진영 프로듀서가 직접 걸그룹 안무를 만들고 지도하는 모습이 대중에게 익숙했던 것에 비춰 보면 이 본부장의 부각은 신선한 물결로 보인다.

이달 5일 데뷔해 7일 만에 뮤직비디오(‘ATHLETIC GIRL’) 조회수 400만 회를 넘기며 파란을 일으킨 여성 4인조 하이키(H1-KEY)도 여성 기획자의 힘이 뒤를 받친다. 황현희 GLG 이사(42)다. SM엔터테인먼트와 CJ ENM을 거친 캐스팅 전문가이자 중국통이다.

케이팝 업계는 1990년대 중반 태동한 뒤 사반세기 동안 강력한 남성 파워를 구심점으로 돌아갔다. SM, YG, JYP 등의 사명(社名)에도 그 이름을 새긴 이수만, 양현석(양군), 박진영 등 자수성가형 설립자 겸 대표 프로듀서의 카리스마가 그룹을 이끌었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는 “그간 케이팝 제작사는 대표와 임원은 중년 남성이고 실무진에는 20, 30대 여성이 다수 포진한 구조로 걸그룹의 콘셉트도 남성 사장의 취향에 맞춘 경우가 많았다”며 “고용이 불안하고 보수가 적으며 업무 부담이 많은 엔터업계 환경을 극복하고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며 성장한 여성들이 늘어난 것도 자연스러운 변화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젊은 여성이 소비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케이팝계에서 가사 논란이나 여성주의 관점을 둘러싼 이슈가 심심찮게 불거지고 있는 것도 높은 성인지 감수성을 지닌 여성 기획자의 부상을 추동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김 평론가는 “실무, 소비, 향유에서 여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을 감안하면 케이팝계의 변화는 늦은 편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 파워가 부상할 것이며 이런 경향은 환영할 만하다”고 평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신인 걸그룹#기획#제작#언니#황현희#민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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