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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특파원칼럼/유재동]심상치 않은 연준의 급제동 경고

입력 2022-01-11 03:00업데이트 2022-01-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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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위험에 이례적인 초고속 긴축
‘제로금리 이후’ 우리는 준비돼 있나
유재동 뉴욕 특파원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는 통화정책회의를 하면 3주 뒤에 그 의사록을 공개한다. 개별 위원들의 구체적 발언이 모두 소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의 회의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많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12월 14, 15일 회의를 정리한 14쪽 분량의 의사록에는 종전에 보기 힘들었던 ‘Balance Sheet’(대차대조표)란 용어가 28차례나 등장한다. 그 의미를 파악하려면 연준의 통화 긴축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중 통화량을 조절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연준의 긴축은 총 3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테이퍼링(tapering). 연준은 2년 전 팬데믹이 터지자 경기 부양을 위해 각종 채권을 사들이며 시중에 돈을 풀어왔다. ‘점점 가늘어진다’는 의미의 테이퍼링은 이 자산 매입 규모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을 뜻한다. 다만 규모만 감소할 뿐 자산은 계속 사들이고 있기 때문에 통화량은 여전히 증가하는 단계다. 그럼에도 “이제 긴축에 발동을 걸었다”는 신호를 시장에 준다.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돈줄 죄기’가 시작된다. 테이퍼링을 통해 자산 매입을 끝내고 나면 연준은 기준금리 격인 연방기금금리(FFR)를 높인다. 그러면 시중은행의 이자율이 상승해 예금이 늘고 통화량은 감소한다. 마지막 단계는 지난 회의 때 거론된 대차대조표 축소(양적긴축·QT)다. 연준은 지금까지 양적완화(QE)라고 불리는 채권 매입을 통해 8조 달러가 넘는 자산을 쌓았다. 그와 반대인 QT는 채권에 만기가 오면 다른 채권에 재투자하지 않고 현금화해 보유 자산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시중 유동성을 직접 흡수하는 것으로 가장 강력한 긴축 수단이다.

이런 과정은 급격하게 진행되면 자칫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천천히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최근에도 그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를 헬기로 뿌리다시피 한 연준은 2013년 “이제 경기가 살아났다”는 판단에 조심스레 출구전략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 후 테이퍼링과 금리인상, QT로 이르는 ‘긴축 3종 세트’가 차례로 진행되는 데는 장장 6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렇게까지 뜸을 들인 것은 연준이 돈줄만 조였다 하면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서 전 세계에서 자본 이탈과 증시 폭락 같은 심각한 후유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연준의 이번 행보가 심상치 않은 것은 과거 수년간 이어졌던 긴축 과정을 불과 수개월로 압축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지난해 11월 테이퍼링에 착수한 연준은 올 3월 자산 매입을 마치면 바로 금리를 올리겠다고 사실상 예고한 상태다. 또 이번 의사록을 보면 연준 위원들은 금리 인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QT를 시작하고, 그것도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이를 진행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마치 군사작전을 연상케 하는 이런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은 그만큼 미국 경제 상황이 어딘가 매우 급박하다는 신호다. 오랜 ‘현금 살포’로 고삐가 풀려버린 물가, 기업들의 극심한 인력난은 그 대표적 사례다.

‘발등의 불’은 한국 등 다른 나라들이다. 공급망 위기를 계기로 ‘홀로서기’에 돌입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요소수 사태에서 보듯 해외에서 조금만 변수가 생겨도 온 나라가 요동칠 정도로 대외 리스크가 크다. 그간 세계 경제는 미국의 부양 덕에 팬데믹이라는 큰 충격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 순풍에 올라타 안심하던 나라들에 연준이 전례 없는 급제동 경고를 보내고 있다. 안전띠를 단단히 매야 한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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