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창고, 무리한 겨울 야간공사… 샌드위치 패널이 불 키운듯”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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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냉동창고 공사장 화재]35년 경력 前소방관이 본 화재현장

35년 경력의 경광숙 전 소방관이 7일 경기 평택시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공사 화재 현장을 기자와 함께 둘러보고 있다. 평택=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35년 경력의 경광숙 전 소방관이 7일 경기 평택시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공사 화재 현장을 기자와 함께 둘러보고 있다. 평택=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겨울에 무리한 야간작업을 하다 불이 났을 것으로 의심됩니다. 안타까운 소방관 순직이 반복되고 있는데 소방당국의 대응도 아쉽습니다.”

7일 오후 경기 평택시에서 만난 경광숙 전 소방관은 냉동창고 신축 공사 화재 현장 주변을 기자와 함께 3시간가량 둘러보는 동안 탄식을 멈추지 않았다. 소방관으로 35년 동안 일한 경 전 소방관은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때 서울 도봉소방서 구조대장으로 수십 명의 생명을 구한 안전 전문가다.
○ 무리한 야간작업 강행
평택=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평택=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경 전 소방관은 공기를 단축하기 위한 무리한 야간작업이 화재의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화재 발생 신고 시간은 5일 오후 11시 46분. 당시 현장 1층에서 작업자 5명이 바닥 타설과 미장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기온이 낮으면 표면 수분이 건조되지 않기 때문에 바닥공사는 영상 5도 이하에서는 가급적 하지 않는다”며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작업했으니 영하였을 텐데 양생을 위한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화기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동한 소방당국은 큰불을 잡은 후 경보를 해제했는데, 이후 송탄소방서 구조팀 소속 소방관 5명이 인명 수색을 하기 위해 투입됐다가 갑자기 불길이 재확산돼 그중 3명이 참변을 당했다.

경 전 소방관은 건물 외벽이 샌드위치 패널로 돼 있고 현장에 보온재 등이 많아 불길이 급격하게 되살아났을 것으로 봤다. 그는 “철판 사이 우레탄이나 스티로폼이 들어간 샌드위치 패널의 경우 겉으로는 진화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후 작은 불씨만 생기면 불길이 폭발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후배 소방관들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 반복되는 소방관 순직, 개선 매뉴얼 시급
35년 경력의 경광숙 전 소방관이 7일 경기 평택시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공사 화재 현장을 기자와 함께 둘러보고 있다. 평택=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35년 경력의 경광숙 전 소방관이 7일 경기 평택시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공사 화재 현장을 기자와 함께 둘러보고 있다. 평택=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해 6월 경기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때 소방관 한 명이 고립돼 숨졌는데 7개월 만에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 것을 두고 소방당국의 대응도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경 전 소방관은 “현장에 있지 않아 함부로 말할 순 없지만 화재 현장에서 한꺼번에 인력을 철수시킬 경우 이번처럼 일부가 고립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잔불이 남은 상황이라면 화재진압팀을 철수시키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구조팀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전장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구조팀에 퇴로 확보를 위한 라이트라인이 지급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라이트라인은 짙은 연기 속에서 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불빛으로 탈출 경로를 표시해 주는 장비다.

‘소방장비 분류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라이트라인은 화재 진압 기본 장비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사고를 당한 송탄소방서 구조팀이 라이트라인을 지참했느냐는 본보의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경 전 소방관은 “경찰과 소방 등이 총력을 기울여 소방관 인명 피해가 커진 이유 등을 분석 중인 걸로 안다”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외부 기관 등이 참여한 철저한 분석을 거쳐 현장 상황에 맞도록 화재 진압 매뉴얼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번 사고를 두고 예견된 인재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공사 현장에서는 2020년 12월에도 작업자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를 조사한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2월 발간한 사고 조사 보고서에서 공사 발주자(사모펀드)의 투자자와 시공사가 사실상 ‘같은 주체’라며 “감리의 위상이 건설사와 대등한 관계에서 견제를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택=이경진 기자 lkj@donga.com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평택 창고#화재현장#야간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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